잘못 구할 수도 있는데 왜 “믿고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왜 “믿고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이기심과 탐욕, 질투와 복수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참으로 좋은지도 모른 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강한 표현으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확신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믿음은 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의 믿음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병은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이 사업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원하는 결과를 강하게 상상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믿음이라기보다 소원에 대한 확신이나 종교적인 자기암시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은 원하는 결과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지혜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제 형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능히 일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보다 더 선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중심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관계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성경의 기도 약속은 어느 구절 하나만 떼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과의 관계, 말씀 안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뜻, 사랑과 용서의 문맥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받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의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면, 우리의 욕망은 그대로 방치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심판하고 정결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소원이 사라지기도 하고, 더 깊어지기도 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는 하나님과 무관한 욕망의 무제한적인 목록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안에서 드리는 모든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으신다는 담대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기도까지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욕망이 섞인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정결한 동기를 가진 뒤에야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동기를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소유하려는 마음이 섞여 있고, 사명을 구하지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숨어 있으며,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완전히 깨끗한 동기로만 기도해야 한다면 아무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기도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은 채 욕망을 품고 사는 것보다, 그 욕망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완성된 사람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기도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물면서 이렇게 묻게 됩니다.

“제가 왜 이것을 이렇게까지 원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없으면 제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입니까?”

기도는 욕망을 표현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욕망이 치료받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문자 그대로만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문장의 표면만 보지 않으십니다. 그 아래에 있는 진정한 필요를 아십니다.

어린아이는 날카로운 칼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칼이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놀이와 관심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위험한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필요에는 더 좋은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공을 구하지만 실제로는 안전과 인정과 삶의 의미를 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반드시 돌아오기를 구하지만, 더 깊은 곳에서는 사랑받고 버림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것보다 우리를 더 깊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은 때로 우리의 문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길을 구했지만 다른 길을 열어 주실 수 있습니다. 문제의 제거를 구했지만 감당할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즉각적인 변화를 구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성숙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깊은 방식으로 응답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소원을 분명하게 구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 인간적 소원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에서 믿음과 맡김이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소원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바람을 분명히 구하면서도, 마지막 결정권을 아버지께 맡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기도는 응답을 의심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선하다는 가장 깊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소원만 붙듭니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은 소원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믿고 구하라”는 말씀은 소극적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혹시 가능하다면”, “될 수 있으면” 정도가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라는 강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제자들이 기도를 형식이나 체념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지조차 믿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막연한 독백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병을 고치실 수 있고, 닫힌 문을 여실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바꾸시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너무 경건한 척하면서 자신의 간절함을 숨기거나, 실망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모르니 아무 기대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태도는 맡김이 아니라 체념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구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내 방법 안에 가두지 않습니다.

믿음과 복종은 서로 반대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구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의 뜻처럼 단정합니다.

성경적 기도는 이 두 극단을 피합니다.

한편으로는 담대하게 구합니다.

“주님, 고쳐 주십시오.”

“이 관계를 회복해 주십시오.”

“필요를 채워 주십시오.”

“이 문을 열어 주십시오.”

다른 한편으로는 겸손하게 맡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더 좋은 길을 아십니다.”

“제가 틀렸다면 제 뜻을 고쳐 주십시오.”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셔도 주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확신과 복종이 함께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담대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는 겸손한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참여시킵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먼저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다음에 일용할 양식과 용서와 시험에서의 보호를 구합니다.

우리의 필요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필요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더 큰 목적 안에 놓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함께 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의 안락만 구했지만, 점차 이웃의 평안도 구합니다. 처음에는 성공만 구했지만, 점차 정직과 충성을 구합니다. 처음에는 고난의 제거만 구했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의 위대한 기적은 단지 세상이 내 뜻대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믿고 구하라는 말씀은 욕망에 대한 허가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라”고 하신 것은 욕망을 절대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두려움 없이 아버지께 나아오라는 초청입니다.

우리는 잘못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못된 기도를 그대로 승인하시는 분이 아니라, 들으시고 정결하게 하시며 더 선한 것으로 이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능히 이루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 욕망은 불완전하고 제 판단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기도를 들으시되, 주님의 지혜와 사랑에 따라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십시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선한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구할 수 있고, 동시에 평안하게 맡길 수 있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전능하실 뿐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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