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미래를 아시면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미래를 아시면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이미 아셨다면,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전쟁과 배신, 질병과 죽음, 지옥의 가능성까지 아셨다면 차라리 창조하지 않는 편이 더 자비롭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창세기의 한 장면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눈물의 시작 앞에 서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묻는 질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미래를 모르셨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을 아시는 분이다(사 46:10). 인간의 타락도, 십자가도, 부활도 그분의 지식 밖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창조는 하나님의 실수였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아셨지만, 죄보다 더 크신 구원의 뜻을 품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미리 아신다는 것은 억지로 시키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택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과, 인간에게 그 선택을 강요하셨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성품을 잘 알아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행동을 강제로 일으킨 것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추측보다 완전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원인이 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선택할 것을 아셨지만, 인간에게 죄를 명령하지 않으셨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선을 거부한 피조물의 왜곡이다. 어둠이 빛과 나란히 창조된 별도의 물질이 아니라 빛의 부재이듯, 악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실체라기보다 선한 의지가 하나님을 떠날 때 생기는 결핍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형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사랑하고 응답하며 순종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사랑할 자유에는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도 포함된다.
자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오직 선만 행하도록 기계처럼 설계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묻게 된다. 그러나 기계는 복종할 수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반응이 아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자유롭게 내어 주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엄을 주셨고, 그 존엄 안에는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는 위험도 들어 있었다.
자유는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칼은 음식을 자를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언어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자유를 악하게 만들지 않으셨지만, 인간은 자유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자유가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유 자체를 제거한다면, 인간의 사랑과 책임과 인격도 함께 사라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필요해서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외로워서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완전하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사랑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충만함 때문이다. 넘치는 샘물이 흘러가듯, 하나님의 선하심은 생명을 낳고 관계를 이루며 기쁨을 나누신다.
창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빼앗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 존재와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신 선물이다. 존재하지 않던 자에게 존재를 주시고, 의미를 모르던 자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입히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죄를 아셨지만 구원도 예정하셨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든 돌발 사고가 아니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창세 전부터 예비된 어린양으로 말한다(벧전 1:19-20).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아시면서도 창조하셨고,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실 길을 준비하셨다.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는 십자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죄가 일어날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이 마지막 승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인간은 자유로 하나님을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자유로운 사랑으로 인간에게 다시 오셨다. 인간은 생명나무에서 떠났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나무인 십자가에 달리셨다. 아담은 붙잡으려 했고, 그리스도는 자신을 비우셨다. 아담의 불순종이 죽음을 불러왔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롬 5:18-19).
하나님은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미리 아시면서도 창조하셨다는 말은 자칫 잔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통을 만들어 놓고 안전한 하늘에서 구경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고통 속으로 들어오셨다. 배고픔을 겪으셨고, 배신당하셨으며,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흘릴 눈물을 미리 아셨을 뿐 아니라, 그 눈물을 자신의 눈물로 삼으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고통에 대하여 내놓으신 철학적 설명이 아니라, 고통받는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오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악을 정당화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악의 칼날을 자신의 몸으로 받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할지 아셨다. 그리고 그 대가를 인간에게만 지우지 않으셨다. 창조주께서 친히 그 값을 담당하셨다.
창조의 의미는 타락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중간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고통과 죄가 마지막 결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가 에덴의 상실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 하늘과 새 땅, 부활과 심판, 눈물의 종말이 남아 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죄 이전의 상태로 단순히 되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처음보다 더 영광스러운 완성을 이루신다. 처음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었지만,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다시는 죽음과 저주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계 21:4).
지금 우리가 보는 세계는 완성된 그림이 아니다. 아직 젖어 있는 물감이며, 마지막 장이 쓰이지 않은 이야기이다. 한 장면만 보고 작가의 뜻 전체를 판단할 수 없듯, 현재의 고통만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 전체를 단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않는다면 왜 창조하셨는가
이 질문은 더욱 무겁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이 끝내 하나님을 거절할 것을 아셨다면, 왜 그들을 존재하게 하셨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돌이켜 살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겔 18:23).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증언한다(딤전 2:4).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강제로 구원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초대할 수 있지만 강간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진지하게 대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의 거절 또한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지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두 진리를 동시에 붙든다. 하나님은 구원의 주권자이시며, 인간은 자신의 응답에 책임을 진다.
이 신비 앞에서는 지나친 단정 대신 경외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실패할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아셨다. 그러나 타락만 보신 것은 아니다. 회개할 베드로도 보셨고, 십자가 아래 돌아올 백부장도 보셨으며, 세상의 끝에서 셀 수 없는 무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도 보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아셨지만, 그 죄로 인간을 정의하지 않으셨다. 인간이 무너질 것도 아셨지만, 은혜로 다시 일으키실 것도 아셨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작하지 못한다. 사랑하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관계를 피하고, 실패할까 두려워 길을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실패를 아시면서도 창조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사랑의 용기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실패조차 구원의 재료로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창조의 마지막 말은 죄가 아니라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면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한 문장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실패하게 만들지 못하며, 죽음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넘어질 것을 아셨지만, 그보다 더 깊이 내려와 붙드실 것을 아셨다. 인간이 자신을 버릴 것을 아셨지만, 자신은 인간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실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창조는 무모한 실험이 아니다. 창조는 십자가와 부활을 품은 사랑의 결정이다.
하나님은 죄 없는 세계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찾아가 구원하시고, 마침내 새롭게 하실 세계를 사랑하셨다. 인간이 어둠을 만들 것을 아셨지만, 그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실 것도 아셨다.
창조의 시작에는 빛이 있었고, 창조의 완성에도 빛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의 실패를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실패보다 자신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