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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데 왜 낙심할까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낙심할까요? 하나님을 믿는데도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열매는 보이지 않으며,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낙심한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도 깊이 낙심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향해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놀라운 승리를 경험한 직후 광야로 도망하여 죽기를 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완고함과 시대의 비극 앞에서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을 언제나 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다시 부르는 사람으로 보여 줍니다. 낙심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일이 조금은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도하면 길이 열리고, 선하게 살면 좋은 결과가 돌아오며, 충성하면 열매가 맺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고, 사랑을 베푼 사람이 배신당하며, 오래 기도한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낙심은 단순히 일이 어려워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질 때 찾아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한 방식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라고 생각했던 십자가가 실제로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낙심도 때로 하나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낙심은 오래된 피로에서 오기도 합니다 영혼이 낙심하는 이유를 언제나 죄나 믿음 부족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교회에서 자주 듣지만,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려운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기도만 하는 태도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만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머리로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시며, 나의 삶을 아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도 단지 그 사람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성품을 신뢰하고, 약속을 의지하며, 자신의 일부를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역시 그분께 삶을 맡기는 관계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지식이면서 동시에 의탁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하나님께 실제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는 목적지와 과정과 결과를 모두 알고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길을 나섰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이 분명해진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무모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은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하고 기도한 뒤에도 알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미래 전체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 정직해야 한다는 것, 용서해야 한다는 것, 사랑해야 ...

천국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가요?

  천국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가요? 천국에 대한 소망은 단순히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며, 죄와 죽음으로 깨어진 모든 것이 새롭게 회복될 것을 기다리는 믿음 입니다. 많은 사람은 천국을 이 세상을 떠나 영혼이 구름 위에서 머무는 곳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현실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시고, 부활한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데 있습니다. 천국의 중심은 장소보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을 생각할 때 먼저 아름다운 풍경과 황금길, 고통 없는 삶을 떠올립니다. 물론 성경은 천국에 눈물과 죽음과 아픔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장 큰 복은 환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누리는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만 누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영원히 기뻐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외로움과 불안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하나님과의 단절이 있습니다. 죄는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과 타인과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게 합니다. 천국은 이러한 모든 단절이 치유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단지 고통 없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온전히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합니다 기독교의 천국 소망은 인간의 상상이나 막연한 낙관주의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복음에 근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음이 인간의 마지막 운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이자 첫 열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막연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대개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찬양할 때 눈물이 나며, 기도할 때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여깁니다. 물론 이러한 감정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은 감정보다 더 깊고 넓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사랑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 사랑은 인간의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죄를 덜 지어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순종하며, 회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의무를 낳지만, 의무가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주시면 감사하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이 좋으며, 기도가 응답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원의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신앙이 없는 사람만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지하게 믿으려는 사람이 반드시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때로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경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며,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계신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처럼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과 희생을 통해 그 존재를 압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을 통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압니다. 사람의 마음도 직접 볼 수 없지만, 말과 표정과 선택을 통해 그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체를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나타내신 흔적을 통해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하늘과 별, 계절의 순환, 생명의 질서와 인간의 양심은 우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자연을 보고 막연히 어떤 신이 있다고 믿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육체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과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드러났다는 의미입니다.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

믿음과 우울은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믿음과 우울은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은 우울한 자신을 보며 두 번 아파한다. 한 번은 마음이 어두워서 아프고, 또 한 번은 믿는 사람이 우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프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아무런 기쁨이 없을까요?” “기도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항상 감사하고 평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먼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우울하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우울은 한 사람의 내면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믿음은 영혼이 언제나 밝은 감정 속에 머무는 상태가 아니며, 우울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생기는 감정도 아니다. 우울은 단순한 슬픔과 다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기분이 가라앉을 때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임상적 우울증은 잠시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슬픔과 다르다. 지속적인 우울감이나 흥미의 상실이 수면, 식사, 집중력, 일과 관계 등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유전적·생물학적·환경적·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울을 오직 영적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영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과 관계와 기억을 지닌 하나의 전인적 존재이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지칠 수 있고, 오랜 상실과 관계의 상처가 신체의 리듬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반대로 수면 부족과 신체적 질환, 과도한 스트레스가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울한 사람에게 “기도를 더 하라”고만 말하는 것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믿음으로 걸으라고 재촉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기도는 필요하지만, 기도가 치료와 상담과 휴식을 배제하지 않는다. 성경의 믿음은 슬픔을 감추지 않는다 성경에는 어두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고, 예레미야도 자신의 출생을 탄식했다. 시편의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스스...

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불안할까요?

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불안할까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언제나 신앙의 실패를 뜻하지 않습니다. 때로 불안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는 신호이고, 오래 참아 온 감정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사람들도 불안했습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경험한 뒤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증거 에 더 가깝습니다. 믿음은 감정을 없애는 능력이 아닙니다 많은 신앙인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에 대한 지나치게 이상화된 생각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심장이 빨리 뛰지 않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갑자기 분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하지?”라고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불안하지만, 이 불안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만 받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의 기도는 흔들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말들로 가득합니다. 불안은 믿음의 문제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불안에는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어떤 불안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옵니다. 어떤 불안은 과거에 받은 상처에서 옵니다. 버림받았던 경험, 실패했던 기억, 사랑받지 못했던 감정이 현재의 작은 사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