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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가요?

  천국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가요? 천국에 대한 소망은 단순히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며, 죄와 죽음으로 깨어진 모든 것이 새롭게 회복될 것을 기다리는 믿음 입니다. 많은 사람은 천국을 이 세상을 떠나 영혼이 구름 위에서 머무는 곳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소망은 현실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시고, 부활한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데 있습니다. 천국의 중심은 장소보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을 생각할 때 먼저 아름다운 풍경과 황금길, 고통 없는 삶을 떠올립니다. 물론 성경은 천국에 눈물과 죽음과 아픔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장 큰 복은 환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누리는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만 누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영원히 기뻐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외로움과 불안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하나님과의 단절이 있습니다. 죄는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과 타인과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게 합니다. 천국은 이러한 모든 단절이 치유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단지 고통 없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온전히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합니다 기독교의 천국 소망은 인간의 상상이나 막연한 낙관주의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복음에 근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음이 인간의 마지막 운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이자 첫 열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5 복 ; 마카리오스 70인역에 의하면 이 복은 히브리어 아쉬레의 번역어 이 단어는 외적인 번영 즉 정치 경제 물질 등의 번영을 뜻하는 단어이다. 천국 (바실레이아.. 나라가 아닌 왕국 즉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이 지금 있다. 에스틴-현재시제이다. 오늘 이 말씀에는 놀라운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가난한한자, 즉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을 향하여 예수님을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가난은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로 일어나는 궁핍의 현상으로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된다. 예수님은 구약의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되는 가난한 자를 향하여 복을 선어하고 있는 것이다. 복은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약의 선언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며, 비상식적이다. 외형적인 번영의 복이 가난한 자에게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 비논리를 사용하여 주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전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선언은 청중들로 하여금 충격을 받게하고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즉시 이 질문을 할 것입니다. “왜?” “어떻게 가난한 자가 부자이며, 저주받은 자가 복이있단 말인가?” 주님은 그 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에게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지금 천국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부자이고, 복이 있는 자들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씀도 쉽게 수용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천국은 먼미래의 일이며, 정치적인 독립을 쟁취하여 온전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천국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식민지의 상태이고, 또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천국이 지금 있단 말인가라고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지금(에스틴-현재분사로 지금있다는 뜻이다) 있기 때문이다” (눅17:20-21) 주님의 이 선포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선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