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기도가 허공을 맴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성경을 펼쳐도 문장은 눈앞에서 미끄러진다. 사람들은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기다림 속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언제나 너무 느리다. 하나님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믿어 온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경험이며, 내가 붙들고 있던 신앙의 언어가 힘을 잃는 순간이다.

시편의 시인들도 이 침묵을 알고 있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던 시편 13편의 고백은, 믿음 좋은 사람의 흔들리지 않는 확신보다 오히려 더 진실하다. 성경은 인간의 절망을 감추지 않는다. 믿음은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아픈 채로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처절한 믿음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응답을 사건의 변화로만 이해한다. 병이 나아야 응답이고, 문제가 풀려야 은혜이며, 길이 열려야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환경을 먼저 바꾸시는 분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바꾸신다. 바깥의 문이 닫혀 있을 때 마음속에 새로운 문을 여시고,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신다.

침묵은 부재가 아니다. 침묵은 때로 가장 깊은 임재의 방식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킬 때 우리는 반드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보다 더 깊은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을 때, 하늘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구원은 완성되고 있었다. 인간의 눈에는 버림받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가장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학자들은 침묵을 존재의 빈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에서 침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기대가 내려놓아지는 자리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원하는 답을 기다린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나는 응답을 믿는가, 아니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신앙은 모든 질문에 답을 얻는 일이 아니다. 답을 얻지 못한 채로도 하나님 곁에 머무는 일이다. 믿음은 확신으로만 자라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밤을 지나며 깊어진다. 씨앗이 어둠 속에서 썩어야 싹을 틔우듯, 우리의 신앙도 때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이전의 모습을 잃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더 단단하고 겸손한 믿음이 태어난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너무 빨리 그 침묵을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버림받았다고 단정하지 말고,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정죄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그분 앞에 머물러야 한다. 말이 나오지 않으면 침묵으로 기도하고, 눈물이 흐르면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완성된 문장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다. 말이 되지 못한 탄식까지도 아신다.

언젠가 우리는 돌아보며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침묵의 시간은 믿음이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이 소리보다 깊어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대답 없는 하늘 아래 서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분의 얼굴보다 그분의 손길이 더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기다릴 수 있고, 듣지 못해도 믿을 수 있다. 신앙이란 결국,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놓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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