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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개] 1 950년 9월28일 손양원목사님이 순교하심으로 장례를 했다.장례식후 찍은 가족 사진이다.맨뒤의 학생은 손양원목사 두 아들 손동인,손동신씨를 1948년 여순사건때 죽였던 안재선씨다. 손양원목사가 살려내 양아들로 삼았다. 동인, 동신씨를 대신해서 맞 상주의 책임을 다했다. 하얀 옷을 입은 분은 손양원목사 사모님 정양순씨이며 안고 있는 아들은 손양원목사님이 돌아가신 날 새벽에 태어나신 손동장목사님이시다. 현재 분당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은 둘째딸 동임씨와 셋째 동연씨이다. [사진소개] 애양원 입구에서의 손양원 목사님 손양원목사는 별명이 삼경목사이다.손양원목사를 만나면 세 번 놀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손양원목사를 만나면 외모가 멋지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 외모가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서 첫 번째로 놀라고, 다음으로 그 조그마한 체구에 품어져 나오는 소리에 놀라고,세 번째는 설교말씀에 놀란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삼경목사다. [사진소개] 1939년 7월 14일 애양원에 이사 한 후 사택앞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여순반란사건 때 아들 동인과 동신이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하나님께 드린 10가지 제목의 감사입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지요. 하나님 ,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요,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 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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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의 기독교 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백홍준(白鴻俊)은 1848년에 평북 의주(義州)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북산(北山)이다.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1874년 10월경 만주의 통화현(通化縣) 고려문(高麗門)을 방문하였다가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선교사인 로스(Ross, J.·羅約翰)목사를 만나 한국 정세와 발음법을 가르쳐주고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과 '훈아진언'(訓兒眞言)이라는 소책자를 받아온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가져 온 책자를 몇몇 친구들과 함께 2∼3년간 공부한 다음 북산은 1879년 순전히 '교리를 배울' 목적으로 로스목사를 찾아 만주 우장(牛莊)으로 갔는데, 그때는 로스목사가 안식년 휴가를 맞아 조국인 영국으로 귀국하고 없었다. 대신 같은 선교회 소속인 매킨타이어(MaIntyre, J.·馬勤泰) 목사가 그를 맞이하였고, 그곳에서 북산은 구도자로서 3,4개월을 지냈다. 마침내 그는 신앙을 고백하고 친구인 이응찬(李應贊), 이성하(李成夏), 김진기(金鎭基) 등과 함께 세례를 받고 기독교 장로교회의 신자가 되었다. 이 네 사람은 한날 한시 한꺼번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받았으며, 이름이 전하지 않는 첫 세례인이 배출된 직후에 북산이 두 번째로 세례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그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만주로 돌아 온 로스목사가 주도하는 중국의 한문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에 서너달동안 착수하였다. 이처럼 여러 명의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나라 밖에서 한글로 성서를 번역했다는 일 자체가 바로 한국기독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즈음 1880년 의주에 있던 10여명의 구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매킨타이어 목사가 북산을 시켜 성경과 소책자 한 상자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랬는데 그가 머무르던 국경지역의 여관에서 짐보따리를 수상히 여긴 주인의 신고로 관헌에 의해 압수되고 동봉한 편지가 발각되어 약 3개월간 투옥된다. 당시 나라에서 금하던 천주교신자가 아닌 까닭에 풀려 나오기는 했지만 이로인해 북산은 거의 모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