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우울은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믿음과 우울은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은 우울한 자신을 보며 두 번 아파한다. 한 번은 마음이 어두워서 아프고, 또 한 번은 믿는 사람이 우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프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아무런 기쁨이 없을까요?”

“기도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항상 감사하고 평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먼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우울하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우울은 한 사람의 내면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믿음은 영혼이 언제나 밝은 감정 속에 머무는 상태가 아니며, 우울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생기는 감정도 아니다.

우울은 단순한 슬픔과 다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기분이 가라앉을 때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임상적 우울증은 잠시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슬픔과 다르다. 지속적인 우울감이나 흥미의 상실이 수면, 식사, 집중력, 일과 관계 등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유전적·생물학적·환경적·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울을 오직 영적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영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과 관계와 기억을 지닌 하나의 전인적 존재이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지칠 수 있고, 오랜 상실과 관계의 상처가 신체의 리듬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반대로 수면 부족과 신체적 질환, 과도한 스트레스가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울한 사람에게 “기도를 더 하라”고만 말하는 것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믿음으로 걸으라고 재촉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기도는 필요하지만, 기도가 치료와 상담과 휴식을 배제하지 않는다.

성경의 믿음은 슬픔을 감추지 않는다

성경에는 어두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고, 예레미야도 자신의 출생을 탄식했다. 시편의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승리 이후 광야로 도망하여 죽기를 구했다.

물론 오늘날의 의학적 기준을 과거의 성경 인물에게 적용해 그들을 우울증 환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경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었던 절망과 두려움과 영혼의 어둠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적 믿음은 감정을 삭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드러내도록 한다. 시편에는 찬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탄식이 있고, 감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의가 있으며, 확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질문이 있다.

탄식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다. 탄식은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말하는 믿음의 언어이다.

우울할 때 하나님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우울이 깊어지면 사람은 자신과 세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자신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미래에는 희망이 없으며, 하나님마저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렸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밤에는 산도, 나무도, 길도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울은 때때로 영혼의 시야를 좁히고, 사랑받았던 기억과 가능성의 감각을 흐리게 한다. 그때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절망을 현실 전체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이 삶의 최종 판결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 힘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놓지 않으신다. 구원의 근거는 내가 얼마나 강하게 하나님을 느끼는가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나를 붙드시는가에 있다.

믿음은 항상 밝은 감정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늘 기쁘고 평안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기쁨은 언제나 웃음이나 고양된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때때로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깊은 신뢰에 가깝다.

믿음은 “나는 괜찮다”고 반복하는 자기암시가 아니다. 믿음은 “나는 지금 괜찮지 않지만, 괜찮지 않은 나도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기도할 힘이 없을 때에는 긴 문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오늘은 살아 내기가 어렵습니다.”

“제 안에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주님을 붙들 수 없으니 주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도 충분히 신앙적이다. 하나님은 유창한 기도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다. 말이 되지 못한 탄식과 눈물도 아신다. 로마서 8장은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한다.

우울을 죄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죄책감, 깨어진 관계, 감추어진 죄가 마음의 고통과 연관될 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우울을 특정한 죄의 결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게 단정하면 고통받는 사람에게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짐을 얹게 된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의 인과응보적 사고를 거부하셨다. 고난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인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 곁에 서는 것이다.

교회는 우울한 사람에게 믿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에도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고, 찬송하지 못하는 날에도 공동체의 찬송에 기대어 있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믿음이 약해진 사람을 책망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그를 대신하여 들어 주는 곳,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이다.

치료를 받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일이 아니다

우울 증상이 계속되고 수면, 식사, 집중, 직장생활과 관계에 뚜렷한 어려움이 생긴다면 전문적인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심각하거나 고통스러운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상담기관이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이 권장된다. 우울증에는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포함한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있다.

치료를 받는 것은 하나님 대신 의사를 의지하는 일이 아니다. 안경을 쓰는 것이 믿음 없음이 아니며, 혈압약을 복용하는 것이 기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우울증 치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반은총의 도움을 받는 일이다.

기도하면서 상담받을 수 있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약을 복용할 수 있다. 목회자의 돌봄과 정신건강 전문가의 치료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

우울 속의 사람에게 필요한 말

우울한 사람에게는 “힘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감사할 것을 찾아라”라는 말보다 이런 말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도움을 찾아봅시다.”

우울한 사람에게 사랑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는 밤을 함께 지나는 것이며, 그 사람이 스스로 희망을 말할 수 없을 때 희망을 대신 기억해 주는 것이다.

믿음은 어둠이 없는 삶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붙들리는 삶이다

믿음과 우울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다윗의 믿음 안에 탄식이 있었고, 욥의 신앙 안에 절망이 있었으며, 예수님의 순종 안에도 겟세마네의 깊은 슬픔이 있었다.

신앙은 어둠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은혜이다. 때로 그 관계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편에서 언약을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에 기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울한 자신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구원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며, 기도할 힘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실망하신 것도 아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누워 쉬어야 하는 날일 수 있다. 하나님은 힘차게 걷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으신다. 걷지 못해 길가에 주저앉은 사람도 찾아오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

당신이 하나님을 붙들지 못하는 날에도 하나님은 당신을 붙들고 계신다.
그리고 때로 믿음이란 그 사실을 힘차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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