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불안할까요?
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불안할까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언제나 신앙의 실패를 뜻하지 않습니다. 때로 불안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는 신호이고, 오래 참아 온 감정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사람들도 불안했습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경험한 뒤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증거에 더 가깝습니다.
믿음은 감정을 없애는 능력이 아닙니다
많은 신앙인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에 대한 지나치게 이상화된 생각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심장이 빨리 뛰지 않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갑자기 분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하지?”라고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불안하지만, 이 불안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만 받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의 기도는 흔들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말들로 가득합니다.
불안은 믿음의 문제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불안에는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어떤 불안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옵니다. 어떤 불안은 과거에 받은 상처에서 옵니다. 버림받았던 경험, 실패했던 기억, 사랑받지 못했던 감정이 현재의 작은 사건을 만나 다시 깨어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불안은 너무 오랫동안 쉬지 못한 몸에서 옵니다. 잠이 부족하고, 긴장이 누적되고, 생활 리듬이 무너지면 마음은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합니다. 이때 불안을 무조건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해석하면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히게 됩니다.
사람은 영혼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과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절망했을 때 먼저 긴 설교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재우시고, 먹이시고, 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지친 몸도 돌보십니다.
불안의 밑바닥에는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돈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하지?”
“내 선택이 틀리면 어떻게 하지?”
불안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살아 내는 감정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오늘의 마음으로 모두 감당하려 하니, 영혼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미래를 모두 설명해 주는 지도가 아닙니다. 신앙은 내일을 모르면서도 오늘 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흔히 설명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때로 동행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불안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일 때가 많습니다.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이름 붙여야 합니다
불안을 신앙적으로 극복하려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믿어야지.”
“감사해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이런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고통을 덮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자신의 불안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실제로 일어난 일과 내 상상 속의 일을 구분할 수 있는가?”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불안은 최근의 사건 때문인가, 오래된 상처와 연결되어 있는가?”
불안은 막연할 때 더 커집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름을 붙이면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다”가 아니라 “나는 거절당할까 봐 두렵다”, “경제적으로 무너질까 봐 걱정된다”, “혼자 남겨질까 봐 무섭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기도도 막연하게 하기보다 그 두려움의 이름을 하나님께 솔직히 말씀드리는 편이 좋습니다.
기도는 불안을 즉시 제거하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했는데도 불안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여 내 감정을 즉시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불안한 내가 하나님 앞에 머무는 일입니다. 어떤 날에는 기도 후에 평안해지지만, 어떤 날에는 여전히 불안한 채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불안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불안 속에서 혼자 버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이렇게 드려도 됩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많이 불안합니다.
무엇이 두려운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하다고 꾸짖기보다,
이 두려움 속에서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오늘 하루 감당할 힘만 주십시오.”
긴 기도를 할 수 없는 날에는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는 한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불안한 나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불안한 사람은 불안 자체보다, 불안한 자신을 비난하면서 더 깊이 무너집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데 나는 왜 이럴까?”
“하나님도 나를 실망스럽게 보시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을 멀리서 평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가 먼지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강한 척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은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 보십시오
불안할 때는 인생 전체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오늘의 작은 범위를 돌보는 것이 좋습니다.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잠을 조금 더 확보하고, 햇빛을 보며 걷고, 카페인과 과도한 뉴스·영상 소비를 줄여 보십시오.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현재의 마음을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혼자 생각하면 불안은 커지지만, 말로 표현하면 생각과 현실을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도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한 편을 천천히 읽고,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을 반복해도 됩니다. 특히 시편 23편, 42편, 46편, 56편, 121편은 불안한 마음으로 읽기에 좋은 본문입니다.
다만 불안이 오래 지속되고, 잠이나 식사와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하거나, 공황 증상과 극심한 절망으로 이어진다면 목회 상담과 함께 전문 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치료와 상담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뿐 아니라 사람과 의학과 돌봄의 관계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믿음은 불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돌아갈 곳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의 불안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안할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불안하다고 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더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불안은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미래의 결론도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평안해진 뒤에야 곁에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불안의 한가운데에 함께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