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신앙칼럼인 게시물 표시

7일간의 창조와 현대의 그리스도인

  7일간의 창조와 현대의 그리스도인 창세기의 첫 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시며, 말씀으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시고 어둠 속에 빛을 불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 이야기는 우주가 언제, 어떤 물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 세계가 누구에게서 왔으며, 인간은 누구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밝히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의 안식까지 포함한 창조의 한 주간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기본적인 리듬을 보여 줍니다. 일하고, 멈추고,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삶입니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을 구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나타나자 어둠과 구별되었고, 낮과 밤의 질서가 세워졌습니다. 현대인은 수많은 정보 속에 살아가지만 무엇이 참인지 분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밝게 보인다고 모두 빛은 아니며, 많은 사람이 선택한다고 모두 선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유행만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빛과 어둠을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빛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을 정죄하며 자신만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거짓을 빛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분별은 타인을 판단하는 칼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등불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날, 경계를 존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을 두어 경계를 만드셨습니다. 창조는 무질서한 혼합이 아니라 구별과 한계를 통해 아름다워졌습니다. 현대인은 한계를 부정하려 합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유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안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할 수도 없고, 모든 문제를 책임질 수도 없습니...

엘리야와 로뎀나무

  엘리야와 로뎀나무 갈멜산의 엘리야는 불을 부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알 선지자들 앞에 홀로 서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백성은 엎드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날은 엘리야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위대한 승리 다음 장면에서 전혀 다른 엘리야를 보여 줍니다.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는 광야로 도망합니다. 마침내 한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아 죽기를 구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어제까지 불을 내리던 선지자가 오늘은 살아갈 힘조차 잃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도 무너질 수 있고, 강한 믿음을 보였던 사람도 깊이 낙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사람을 지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언제나 담대해야 하고, 은혜를 받으면 슬픔이 없어야 하며, 사명을 받은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이야기는 믿음과 피로가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무너진 것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너무 오래 혼자 싸웠고, 지나치게 긴장했으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갈멜산의 승리 뒤에는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소진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도 놀랄 만큼 강해질 수 있지만, 긴장이 풀린 뒤 갑자기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은 언제나 믿음의 부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너무 오래 견딘 결과입니다. 오랫동안 울지 못한 사람이 뒤늦게 우는 것이며, 멈추지 못했던 사람이 마침내 쓰러지는 것입니다. 로뎀나무는 크고 화려한 나무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입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잠시 뜨거운 햇빛을 피하게 해 줍니다. 엘리야는 바로 그 나무 아래 누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즉시 꾸짖...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막연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대개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찬양할 때 눈물이 나며, 기도할 때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여깁니다. 물론 이러한 감정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은 감정보다 더 깊고 넓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사랑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 사랑은 인간의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죄를 덜 지어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순종하며, 회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의무를 낳지만, 의무가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주시면 감사하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이 좋으며, 기도가 응답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