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데 왜 인간을 시험하시는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데 왜 인간을 시험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면,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까. 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고, 왜 욥이 고난의 밤을 지나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신다면 시험은 불필요해 보인다. 마치 답을 알고 있는 교사가 굳이 시험지를 나누어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시험은 하나님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과정이 아니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알아내시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마음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믿는지 모르고,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시험은 숨겨진 마음이 삶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이다.

시험과 유혹은 다르다

성경에서 시험을 말할 때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시험하시지만, 죄를 짓도록 유혹하지는 않으신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야고보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악으로 끌어당기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의 목적은 넘어뜨리는 데 있지 않고 드러내고 연단하는 데 있다. 반면 사탄의 유혹은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고 파괴하려 한다.

같은 상황도 목적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광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배우는 시험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불평과 우상숭배로 끌어가는 유혹의 장소이기도 했다. 불은 금을 정련하기도 하고 마른 풀을 태우기도 한다. 무엇을 향해 불이 놓였는가가 중요하다.

시험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뒤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하나님이 이전에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셨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분이다(시 139:1-4). 그러므로 내가 이제야 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정보를 새롭게 얻으셨다는 뜻이라기보다, 아브라함의 경외가 역사 속에서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씨앗 속에 나무가 들어 있지만, 땅을 뚫고 나오기 전까지는 그 생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의 마음 안에 있었지만, 모리아산에서 비로소 순종의 형태로 드러났다. 시험은 믿음을 만들어 내기 전에, 숨어 있던 믿음을 보이게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아셨지만, 아브라함 자신은 자기 믿음이 어디까지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모리아산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발견한 곳이라기보다, 아브라함이 자기 믿음을 발견한 곳이었다.

시험은 마음속 우상의 이름을 드러낸다

사람은 평안할 때 자신이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잘 모른다. 모든 것이 손안에 있을 때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재물도 사랑하며 명예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광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몰라서 마련한 실험실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불신과 탐욕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애굽은 몸에서는 떠났지만 마음에서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광야는 그 사실을 보여 주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재물이 흔들릴 때 돈이 나의 신이었음을 알게 되고, 관계가 깨질 때 사람의 인정이 나의 구원이었음을 발견한다. 계획이 무너질 때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계획을 지켜 주시리라 기대했음을 깨닫기도 한다.

시험은 우리가 숨겨 둔 우상의 이름을 불러낸다.

시험은 믿음을 파괴하지 않고 정련한다

베드로는 시험받는 믿음을 불로 연단한 금에 비유한다(벧전 1:6-7). 금은 불 속에서 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금이지만, 불을 지나며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가 드러난다.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는 목적도 이와 같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인내와 순종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것이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약 1:2-4). 이것은 고난 자체를 즐기라는 잔인한 명령이 아니다. 고난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초청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폭풍에서 즉시 꺼내 주시지 않는다. 대신 폭풍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믿음을 빚으신다. 우리는 문제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문제보다 깊은 사람으로 우리를 만드실 때가 있다.

시험은 순종을 실제 역사로 만든다

믿음은 생각 속에만 머물면 아직 완성된 믿음이 아니다.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듯, 믿음도 선택과 순종 속에서 모습을 얻는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리아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되었고, 다니엘의 믿음은 사자굴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기도가 되었다. 세 친구의 믿음은 풀무불 앞에서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용기가 되었다.

시험이 없었다면 그들의 믿음은 내면의 고백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통해 믿음은 역사가 되었고, 한 사람의 마음에 있던 신뢰는 수많은 세대가 읽는 증언이 되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믿음을 공개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 보여 드리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와 세상 앞에 드러나는 증언이다.

시험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무한히 몰아붙이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이 말씀은 모든 고난이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시험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험 가운데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피할 길은 언제나 고난이 즉시 사라지는 문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견딜 힘이며, 공동체의 위로이며, 말씀의 약속이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파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징계조차도 자녀를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것이다(히 12:10-11).

하나님은 시험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지 않으신다

기독교의 가장 깊은 위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험을 멀리서 관찰만 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셨고, 겟세마네에서 순종의 고통을 지나셨으며,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듯한 어둠을 견디셨다.

그는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히 4: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험을 명령하시면서 안전한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의 가장 깊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이다.

십자가는 시험받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설명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동행이다.

시험은 답을 알아내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여 미래를 알아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신다. 그러나 아는 것과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가능성으로만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열매 맺도록 하신다.

시험은 하나님이 답을 모르셔서 내시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시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빚으시는 과정이다.

평탄한 길에서는 발의 힘을 알 수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드러난다. 밤이 오기 전에는 등불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시험은 믿음을 빛나게 하는 어둠이며, 뿌리를 깊게 하는 바람이다.

그러므로 시험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만이 아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가.

때로는 이렇게도 물어야 한다.

이 일을 통하여 내 안의 무엇이 드러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렇기에 시험하신다. 몰라서 확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만 보지 않으시고, 은혜 안에서 빚어질 우리의 모습까지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험의 불이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불 속에서 하나님은 금을 버리지 않으신다. 불순물을 태우시되, 믿음은 지키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고백하게 된다.

시험이 하나님께 나를 증명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에게 증명된 시간이었다고.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일 대표기도문 2025년 11월 23일

남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7가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