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때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때
성경을 펼쳤는데 문장이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눈은 글자를 따라가지만 뜻은 머물지 않고, 몇 장을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은혜롭게 들리던 말씀도 어느 날에는 메마른 글자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자신을 의심합니다.
“내 믿음이 식은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과 멀어진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곧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에도 계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처럼 말씀이 쉽게 싹트는 때가 있는가 하면, 겨울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듯한 때도 있습니다. 겨울의 땅이 죽은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 생명은 조용히 다음 계절을 준비합니다.
말씀을 느끼는 것과 말씀을 믿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종종 말씀을 읽을 때 특별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며, 한 구절이 삶을 뒤흔들어야 제대로 읽은 것처럼 느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깊은 감동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 읽기가 강렬한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감탄하지 않아도 음식이 몸을 살리는 것처럼, 말씀도 당장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우리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믿음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감동이 있을 때 읽는 것도 믿음이지만, 아무 느낌이 없어도 말씀 앞에 앉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오히려 메마른 날의 성경 읽기는 하나님을 향한 더 순수한 기다림일 수 있습니다. 감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쳐 있으면 말씀도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반드시 영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몸이 피곤하거나, 걱정이 많거나, 관계의 상처가 깊으면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에게 긴 문장은 쉽게 머물지 않습니다.
이럴 때 자신을 몰아붙여서는 안 됩니다. “더 집중해야 한다”, “믿음으로 이겨 내야 한다”고 다그칠수록 성경 읽기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지쳐 쓰러졌을 때 하나님은 먼저 그에게 설교하지 않으셨습니다. 먹이시고 재우셨습니다. 때로는 영혼보다 몸을 먼저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자고, 산책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다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기도 합니다.
많이 읽기보다 한 구절에 머물러도 됩니다
말씀이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분량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장을 읽고도 남는 것이 없다면 한 절만 천천히 읽어도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한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단어 하나에 머물러도 됩니다. “목자”, “나의”, “부족함”이라는 말이 지금의 삶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읽기는 정보를 많이 얻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일입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정직하게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되지 않는다면 “하나님, 이 말씀이 지금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해도 됩니다. 그 고백 자체가 이미 기도입니다.
질문하며 읽어도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모든 것에 동의하는 감정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 불편한 말씀, 납득되지 않는 장면 앞에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이 오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나는 왜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울까요?”
질문은 불신앙의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도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욥은 고난의 이유를 물었고, 하박국은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왜 숨어 계시는지, 언제까지 침묵하실 것인지 물었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질문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믿음입니다.
말씀은 이해보다 먼저 우리 안에 머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자마자 모든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땅에 떨어진 즉시 열매가 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 있다가 때가 되면 싹을 틔웁니다.
오늘 이해하지 못한 말씀이 몇 달 후 고난 속에서 다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무심히 읽었던 한 구절이 어느 날 관계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 감동도 없었던 말씀이 훗날 가장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었는데 남는 것이 없다고 해서 헛되다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씀도 필요할 때 다시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읽는 것이 어려우면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듣는 성경을 활용하거나, 짧은 본문을 필사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믿을 만한 주석이나 묵상집을 참고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읽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은 본래 개인의 마음속에서만 읽히도록 주어진 책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낭독되고 해석되며 삶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혼자 읽어도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해설을 읽는 데만 머물지 말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설명은 문을 열어 줄 수 있지만, 그 문을 지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억지로 감동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힘든 순간은 아무 느낌이 없는 것보다, 반드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 내야만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읽고, 이해되는 만큼 받아들이며, 모르는 부분은 남겨 두어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함보다 오래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읽는 시간은 시험을 치르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분의 음성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을 처음부터 모두 이해하지 못하듯, 신앙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에 걸쳐 조금씩 알아 갑니다.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도 말씀 곁에 머무십시오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때,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신을 억지로 몰아세우지도 마십시오. 한 구절만 읽어도 되고, 읽다가 침묵해도 되며, 이해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기도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가가 아니라, 말씀 곁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우리가 말씀을 붙들지만, 어떤 날에는 말씀이 우리를 붙듭니다. 우리가 읽지 못하는 날에도 이미 읽었던 말씀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조용히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고, 하나님도 멀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열매를 보는 계절이 아니라 뿌리가 깊어지는 계절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