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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왕의 사역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1:1) 그의 사역 기간은 740-680으로 약 60년동안으로 본다. 웃시야왕 : 그의 부친은 아마샤-웃시야와 공동통치, 요담의 아버지 요담(BC 750~731) 웃시야의 사망시기 739 *그는 군대를 훈련하여 약 30만명의 군사를 양육하고 재배치 *강장 현대화된 군사무기들을 만들고 제정비 *그 후에 웃시야는 갓, 야브네, 아스돗의 성벽들을 무너뜨리고 아스돗과 그 근방에 자신의 방어 기지로서 도시들을 재건하였다. *또한 유다의 오랜 적국인 블레셋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대하26:6) *사해 근방의 아라바에 살던 마온 족속(Meunites)들이 항복하였다. *마침내 암몬 족속들을 압도하였고 그들을 반식민지화함.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사막에 정착지를 배치하고 공학과 농경기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세벨라(shephelah)평원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부와 군사적 성공은 그를 교만하게 함으로 몰락으로 가게하였다.(대하26:16) 먼저 그는 모세의 규례를 무시하고 성전에서 제사장을 대신하여 분향하려함.(아사랴 제사장이 상소에서 나가라고 했으나 불순종하고 억지로 분향하려 하자 갑자기 문둥병이 그에게 들었고 성소에서 나와야 했다. 그는 남은 생애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모든 통치권을 상실하고 생애를 마쳐야 했다. 심지어 그는 죽을 때에도 왕들의 묘지에 매장되지 못하고 인접한 평지에 매장되어 하나님의 성물에 대한 그의 무시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시편 5편 영어NIV 표현이 특이하다. Give ear to my words, O LORD 1절과 2절이 상이한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을 보니,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애타게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를 알 것 같다. (1-2) 아침에 기도한다? 아직 만남이나 새로운 일이 시작되지 않는 아침에, 원수를 갚아 달라는 기도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정말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인공은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그 긴긴 밤을 새하얗게 지새웠을 것이다. 분노는 해 질녁까지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충고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을 풀지 않으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3) 주인공은 악인들의 죄를 들추고 있다.(4,5,9) 그러면서도 자신은 주의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간다고 말한다.(7) 이 무슨 괴변인가? 인자가 필요하다면 주인공도 죄인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의인이 어디 있으랴. 한명도 없지 않는가! 그러나 자신은 의인의 자격으로 주의 집에 들어간단다. 원수들에 대한 그의 저주는 더해간다. 자신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를 기도하고, 악인들은 그 길이 굽게하고, 자기 꾀에 빠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8,10) 부당해 보이는 기도다. 10절 후반부부터 그 원수들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그들은 주를 배역하고, 자기의 꾀를 쫓아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여호와께 피한다. 그러기에 여호와께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11절과 12절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에게 피하는 자는 기쁨이 있고, 주를 즐거워하고,(11) 복을 받고, 은혜로 호위함을 받는다.(12)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닐까! 이 시편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기도로 시작하지만, 기도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4-6) 이 인식은 그로 하여금 주님의 인자를 깨닫게 하여 주의 집으로 들아가게 했으며, 결국 주께 피하는 자가 참된 기쁨과 즐거움, 복을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즐거운 고백으로 마치고 있다. 기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비록 고통으로 인하여 부...
성만찬 1. 감사 giving of thanks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해 감사의 글을 낭송함으로써 하나님께 특색있게 접근한 유대교로부터 유래한 유산이다. 여기서 성만찬이 유월절의 어린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감사의 의미를 갖는다. 2. 양식 초기에 성만찬은 식사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고전11:21) 디다케 9-10에서도 ‘애찬’이 언급되고 있다. 아마 식사를 통하여 육적 생명을 보장받는 것처럼, 애찬을 영적인 의미로 받아 들인 것 같다. 후기에 식사와 성만찬은 분리되었다. 3. 교제 성만찬을 통하여 초대교회는 교제를 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을 뗌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각 지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것은 성도간의 긴밀한 교제와 친교를 전제하는 것이다. 4. 종말의 소망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만찬에 대하여 “불사의 명약이며 죽음을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원한 생명을 낳는 해독제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경험된다.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성만찬 성례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천국의 잔치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될 때 갖는 최후 최고의 성만찬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성만찬 성례전은 하나님의 모든 과거의 사역을 요약하는 것이며 창조와 최후의 종말 안에서 구속 뒤에 오는 것을 향하도록 우리를 떠민다. 상만찬 성례전은 우리의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상상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제한된 방법 속에서 그것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사사시대는 인간들의 자유와 적극적 헌신을 최대한으로 보장한 시기이다. 왕이라는 수단으로 복종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순종하도록 자유를 보장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드러나야할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기대는 실패했다(?) 불가피하게 왕정의 상태로 가야만 했다. 개개인이 자기의 소견대로 하나님께 복종한 쪽으로 가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위한 우상숭배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대한 기대는 보기좋게 무너졌으며 하나님은 은혜와 갑섭이 아니고서는 결코 거룩해 질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사사기를 명확히 그려준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로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