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요?
창조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입에서 나와 공기를 흔드는 물리적인 음파를 뜻하지 않습니다. 창조 이전에는 인간의 언어도, 소리를 전달할 공기와 청각기관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창조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지혜와 능력이 자신을 표현하여 실제 존재를 일으키는 신적 행위입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현실이 되는 창조적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를 전달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인간의 말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빛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발생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은 어떤 가능성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지 않던 빛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각과 실행 사이의 간격이 없습니다. 인간은 말하고도 이루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바로 그것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사건이며 행위입니다.
창조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입니다
창조의 말씀을 하나님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변덕스러운 욕망이나 순간적인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에서 나오는 완전한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원하셨고, 그 뜻이 창조의 명령으로 나타났으며, 그 명령을 통해 빛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생각, 말, 행동이 서로 분리될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완전한 일치를 이룹니다.
따라서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하나님의 창조 의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문장을 발음하셨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피조 세계를 향하여 효력 있게 표현되었다는 뜻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작정과 실행이라는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모든 것을 자신의 지혜로운 뜻에 따라 작정하셨고, 창조의 말씀을 통해 그 뜻을 시간과 공간 안에 실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적인 자기표현입니다
그렇다고 창조의 말씀을 비인격적인 에너지나 우주의 진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말씀은 막연한 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기계적으로 방출하지 않으셨습니다. 알고, 뜻하시고, 구별하시며, 이름을 부르시고, 좋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지성과 의지와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우주가 무의미한 힘의 충돌에서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롭고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세계의 근원에는 침묵하는 물질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인격이 계십니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세계의 가장 깊은 기초는 무의미한 혼돈이 아니라 의미이며, 우연한 소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말씀은 영원한 성자, 곧 로고스와도 연결됩니다
신약성경은 창조의 말씀을 더욱 깊이 밝혀 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곧 로고스(λόγος)라고 부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일시적인 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계시며 참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자는 아버지의 지혜와 뜻과 영광을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말이 인간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듯, 성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물론 인간의 말이 입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성자가 하나님에게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자는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의 빛에서 보면 창조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부께서 창조를 뜻하셨습니다.
성자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생명과 질서를 이루셨습니다.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입니다. 성부는 말씀하시고, 성자는 그 영원한 말씀이시며, 성령은 창조된 세계에 생명과 충만함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은 비유인가요?
이 표현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인간의 방식으로 묘사하는 신인동형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입과 성대를 사용하여 발음하시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지 꾸며 낸 비유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뜻하시고, 명령하시며,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인간의 말은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어느 정도 반영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가능한 이유도 인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는 분이시기에 인간도 말하고 들으며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표현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실제적인 신적 행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음파를 만들어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인간보다 더 참되고 완전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행적인 말씀입니다
현대 언어철학에는 어떤 말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어떤 행위를 수행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판관이 “유죄를 선고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단지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실제로 실행합니다.
결혼식에서 “두 사람은 이제 부부입니다”라는 선언도 새로운 관계를 공적으로 성립시킵니다. 이를 수행적 언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창조 말씀은 가장 완전한 의미의 수행적 말씀입니다. 다만 인간의 선언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권위에 의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존재 자체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빛이 있기를 바라신 뒤 별도의 재료를 찾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심 자체가 창조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세계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빛이 있으라.”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라.”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구별하고, 경계를 정하고, 이름을 붙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하게 할 뿐 아니라 존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히 힘이 아닙니다. 힘만 있다면 무질서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질서가 생기고, 선하심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자라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각각의 피조물이 자신의 자리를 얻습니다.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세계가 이해 가능한 구조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세계가 로고스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우주가 일정한 질서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연에는 반복되는 법칙이 있고, 인간의 이성은 그것을 어느 정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과 세계 모두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우주의 질서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둘 다 하나님의 로고스에 근거합니다.
과학이 가능한 것도 세계가 완전히 무질서한 혼돈이 아니라, 탐구할 수 있는 질서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세계가 이성적으로 탐구 가능한지를 더 근원적으로 질문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의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 속에서 존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아무런 의미 없이 세상에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말만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과 자신의 욕망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창조의 질서가 다시 혼돈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서도 새로운 창조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죽은 영혼을 살리십니다. 바울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고 말합니다. 최초 창조의 “빛이 있으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새 창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의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자기표현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말씀은 우리가 아는 음파나 발성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께 지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표현입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명령입니다.
성자를 통하여 이루어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행위입니다.
세계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자기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리보다 깊습니다. 인간의 소리는 공기를 흔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無)에서 존재를 불러냅니다. 인간의 말은 현실을 설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주파수의 소리를 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지혜와 능력을 인격적으로 표현하셨고, 그 표현이 세계라는 현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음성이 물질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불려 나온 존재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말없이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세계이며, 인간은 그 말씀에 응답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신앙이란 결국 나를 존재하게 하신 그 말씀을 다시 듣고, 혼돈하던 삶이 그 말씀 안에서 질서와 의미를 되찾아 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