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자신의 존재를 더 분명하게 보여 주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왜 자신의 존재를 더 분명하게 보여 주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신다면, 왜 하늘을 열어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왜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큰 음성으로 말씀하지 않으시며, 고통받는 사람이 부르짖을 때조차 침묵하시는가. 이것은 불신앙자의 질문만이 아니다. 시편 기자도 물었고, 욥도 탄식했으며, 십자가 위의 예수님조차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어둠을 지나셨다.
성경은 이 질문을 금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한, 그것마저 기도의 한 형태로 받아들인다.
주께서는 참으로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하나님의 숨으심은 믿음의 가장 오래된 난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자신을 보여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사물이 아니시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눈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공간 안에 크기와 모양을 가진 물질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세계 안에 놓인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세계를 존재하게 하시는 창조주이시다.
소설 속 인물이 작가를 찾아 책장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작가를 발견할 수는 없다. 작가는 이야기 속 사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가 존재하게 된 근원이다. 그러나 작가의 정신은 문체와 구성, 인물과 사건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별들 가운데 가장 큰 별도 아니며, 우주 끝에 숨어 있는 거대한 존재도 아니다. 모든 별이 빛나게 하고, 모든 존재가 존재하도록 붙들고 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은 부재의 증거라기보다 초월성의 표지이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완전히 침묵하고 계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인간의 양심, 이스라엘의 역사와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리셨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자기 계시는 자연의 장엄함이나 철학적 논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인간은 하나님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압도적인 증거를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베들레헴의 아기로 오셨다. 인간은 천둥 같은 음성을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말씀하셨다. 인간은 영광의 왕좌를 찾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계시는 눈부신 힘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의 자기 비움이었다. 너무 낮아져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너무 가까이 오셔서 오히려 평범해 보일 만큼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낮아지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너무 낮은 곳에 계시는지도 모른다. 굶주린 사람,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 십자가에 달린 사람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숭배하는 힘의 모습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신다. 힘으로 인간을 압도할 수는 있지만, 힘만으로 인간의 사랑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백한 증거가 반드시 믿음을 낳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 주시면 모두가 믿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심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도 그분을 믿기보다 죽이려 했다.
증거가 부족해서만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진리를 외면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그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드러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두려워 복종할 수 있다. 믿음은 단순한 사실 인정이 아니라 인격적 신뢰이며, 사랑은 강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빛을 주시지만, 억지로 굴복시키지 않을 만큼 자신을 감추신다.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고, 거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물러설 여지가 남아 있다.
하나님의 숨으심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공간이다
사랑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선택을 완전히 장악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지배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응답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숨으심은 그 자유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둔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병원 복도에서 자녀의 죽음을 지켜보는 부모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자유를 위한 철학적 장치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쟁과 학대와 가난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숨으심은 가슴을 찢는 고통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쉽게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는 논리보다 눈물이 먼저이며, 해답보다 동행이 먼저이다.
죄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안개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숨어 계신 이유를 인간의 죄와도 연결한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죄는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 아니다. 인간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붙잡아 두는 영적 자기중심성이다. 태양이 사라져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창문을 닫았기 때문에 방이 어두울 수 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언제나 개인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욥의 고난은 그런 단순한 공식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교만, 두려움이 하나님의 흔적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사람은 한 번 바라본다고 다 알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은 오랜 대화와 신뢰, 동행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하나님을 아는 일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실험실의 대상처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순종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다. 믿음은 먼저 모든 의심을 제거한 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아니다. 남아 있는 의심을 품고서도 한 걸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빛은 멀리서 분석할 때보다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더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신앙도 밖에서 바라볼 때는 모호하지만,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조금씩 현실이 되신다.
십자가에서도 하나님은 숨어 계셨다
하나님의 숨으심이 가장 깊었던 곳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고 계셨다. 가장 깊은 침묵 속에 가장 큰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숨으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씨앗이 자라듯,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움직인다.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구원의 뿌리를 내리신다.
부활은 그 숨겨진 일이 마침내 빛으로 나온 사건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밤이 깊어지면 태양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태양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빛을 볼 수 없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구름이 산을 가려도 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도 그러하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고 하나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늘 강렬하게 느끼는 능력이 아니라,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감추지 않으셨다. 창조 속에 흔적을 남기셨고, 말씀으로 자신을 알리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굴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압도하고 사랑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신다.
그분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정복자처럼 오시지 않는다.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분으로 오신다.
하나님의 숨으심은 우리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을 찾고, 부르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도록 남겨 두신 거룩한 여백일 수 있다.
그리고 때로 그 여백 속에서, 가장 깊은 믿음이 태어난다. 보아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시는 분을 신뢰하는 믿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