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진노하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진노하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성경은 동시에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악을 향해 진노하신다고 말한다. 사랑이 온유하고 따뜻한 것이라면, 진노는 거칠고 차가운 감정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분노하실 수 있는가.
그러나 사랑과 진노는 반드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는 악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다. 누군가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 어렵다. 사랑이 깊을수록 악에 대한 거부도 깊어진다.
하나님의 진노는 변덕스러운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정의의 옷을 입고 나타난 모습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분노와 다르다
인간의 분노에는 상처받은 자존심과 복수심, 오해와 충동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화를 내고,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할 때 상대를 미워한다. 인간의 진노는 자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공격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분이 상했다고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진노는 죄와 악에 대한 거룩하고 일관된 반응이다.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는 성경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충동적으로 분노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심판보다 회개를 기다리신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하나님의 진노는 성급하지 않다. 오래 참으신 사랑이 끝내 악을 악이라 선언하는 순간이다.
사랑은 악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무조건 허용하는 감정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를 파괴하는 행동을 방치하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를 사랑한다면 병을 좋은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칼을 들어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죄인을 미워하여 파괴하려는 분이 아니라, 죄가 인간을 파괴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무너뜨리며, 인간 자신을 안에서부터 썩게 한다.
하나님께서 죄에 진노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관이다. 폭력과 억압, 거짓과 탐욕, 살인과 배신이 계속되어도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면,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 침묵은 또 하나의 절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피해자의 눈물을 하나님께서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은 정의롭지 않다
우리는 때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동시에 세상의 악이 심판받지 않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전쟁 범죄와 학대, 부패와 착취를 보며 정의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심판에 대한 갈망이 들어 있다. 인간은 악이 마지막 승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악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면 선과 악의 차이는 흐려지고,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으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의 진노는 세상이 도덕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선언이다. 악에는 끝이 있으며, 눈물에는 기억하는 분이 계시고, 억울함에는 마지막 재판장이 계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언약적 사랑에서 나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 진노하신다. 이것은 소유욕에서 나온 질투가 아니라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가난한 자를 억압하며, 형식적인 예배로 자신을 속였다. 선지자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냉정한 판결이 아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픔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배신에도 무관심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관계가 무너질 때 슬퍼하고 분노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이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진노의 목적은 언제나 멸망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때로 심판으로 나타나지만, 자주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로 먼저 임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곧바로 멸망시키기보다 선지자를 보내시고, 말씀으로 깨우시며, 돌이킬 시간을 주신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을 향해 닫힌 문이 아니라, 아직 열려 있는 회개의 문을 가리키는 붉은 경고등이다. 경고가 있다는 것은 아직 돌아갈 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때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파멸의 길에서 붙잡아 돌이키시는 손이다. 아프지만 살리는 손, 날카롭지만 회복시키는 손이다.
십자가에서 사랑과 진노가 만났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가 가장 깊이 만난 곳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여 끝내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심판을 친히 담당하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여 주는 곳도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만 보여 주는 곳도 아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진노와 죄인을 향한 사랑이 동시에 드러난 자리이다.
하나님은 죄를 없던 일처럼 덮지 않으셨다. 죄의 값을 자신이 치르셨다.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이루셨고, 심판을 취소하지 않으면서 죄인을 구원하셨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본다. 동시에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본다.
진노를 피하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
복음은 하나님이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진노를 담당하셨다는 소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는 더 이상 정죄의 불이 아니다. 그것은 죄를 태우고 인간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불이 된다. 하나님은 자녀를 멸망시키지 않으시지만, 자녀 안의 죄를 그대로 두지도 않으신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면허가 아니다. 은혜는 죄인을 사랑하되 죄에서 건져 내는 능력이다.
사랑의 반대는 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우리는 사랑의 반대가 분노라고 생각하지만, 더 근본적인 반대는 무관심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가 무너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파괴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죄에 진노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고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우리의 악과 상처와 파괴를 심각하게 여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뜨거운 사랑의 그림자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선명해지듯,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완전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거부도 완전하다.
진노보다 깊은 하나님의 긍휼
성경은 하나님을 진노 자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진노는 하나님의 본질이라기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반응이다. 죄가 없다면 진노도 없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30:5).
하나님의 진노는 목적지가 아니다. 회개와 회복, 화해와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기뻐하시기보다 긍휼 베풀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의 분노로 불타는 폐허가 아니다. 눈물이 닦이고 죽음이 사라지며,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거하는 새 창조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진노하신다.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미워하시고,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을 부르시며,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심판을 담당하셨다.
진노는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악 앞에서 끝까지 사랑으로 남기 위해 취하는 거룩한 태도이다.
하나님의 진노보다 더 깊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리고 그 긍휼의 가장 깊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