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데 왜 뜻을 돌이키셨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데 왜 뜻을 돌이키셨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한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그런데 같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고 말한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을 멸하시려다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으며(출 32:14), 니느웨의 회개를 보시고 내리려 하셨던 재앙을 거두셨다(욘 3:10).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는 말씀도 있다(삼상 15:11).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어찌 후회하고, 계획을 바꾸며, 뜻을 돌이키실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미래를 잘못 판단하셨던 것일까. 인간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해 계획을 수정하신 것일까.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인간에게 다르게 반응하신다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돌처럼 고정되어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시며 말씀하시고 사랑하시며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분의 존재와 성품, 진리와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선하셨다가 악해지지 않으시며, 신실하셨다가 변덕스러워지지 않으신다. 오늘 사랑하시고 내일 까닭 없이 버리시는 분도 아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 결정을 수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아시며, 그분의 지혜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차가운 정지 상태가 아니라 완전하심의 표현이다. 부족한 존재는 배워야 하므로 변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은 더 나은 존재가 되실 필요가 없다.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의 의미
구약에서 뜻을 돌이키다, 후회하다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나함(נָחַם)이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후회하다, 슬퍼하다, 마음 아파하다, 재앙을 거두다, 위로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는 표현을 인간이 실수를 인정하고 계획을 수정한다는 의미로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셨거나 판단을 잘못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 표현은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역사적 반응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신학에서는 이를 신인동형적 표현 또는 인간적 방식의 계시라고 부른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신 것이다.
해가 뜬다거나 해가 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찰 위치에서 그렇게 보이는 현상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동이 달라진 것처럼 나타난 사건을 인간의 관점에서 묘사한 것이다.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가 변한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에서 회개로 돌아서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에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창문 밖에는 같은 햇빛이 비치고 있지만, 사람이 지하실에서 마당으로 나오면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달라진다. 태양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위치가 변한 것이다.
니느웨가 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심판의 선언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켰을 때, 동일한 하나님의 거룩함과 긍휼은 재앙을 거두시는 용서로 나타났다.
하나님이 악을 향해 심판하시는 것도 변하지 않는 성품에서 나오며,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도 동일한 성품에서 나온다. 심판과 긍휼은 서로 다른 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한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인간의 태도에 응답하시는 방식이다.
겨울에 얼었던 땅이 봄에 녹는 까닭
태양은 같은 빛을 비추지만, 얼음은 녹이고 진흙은 굳힌다. 빛이 두 가지 성품을 가진 것이 아니라, 빛을 받는 대상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교만한 자에게는 심판이 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된다.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에는 회개의 초청이 담겨 있다
성경의 심판 선언은 언제나 미래를 단순히 예보하는 말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돌이키기 위한 경고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뽑고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셨더라도, 그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에 관하여 뜻을 돌이키신다고 선포한다. 반대로 복을 약속받은 민족이라도 악을 행하면 약속된 복을 거두실 수 있다고 말한다(렘 18:7-10).
이는 하나님의 뜻이 불확실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고 자체가 회개를 일으키는 섭리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니느웨는 사십 일이 지나면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말씀 때문에 왕과 백성이 회개했다.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지 않은 것은 예언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심판의 경고가 회개라는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고는 무너뜨리기 위해 날아오는 돌만이 아니다. 낭떠러지 앞에 세워진 표지판이다. 경고를 듣고 돌아선 사람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이 사람을 살렸기 때문이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었는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언약과 하나님의 명예를 붙들고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내리려던 화를 내리지 않으셨다(출 32:11-14).
이 장면을 보면 모세가 분노한 하나님을 설득하여 계획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기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셨고, 그의 기도를 통하여 긍휼을 베푸셨다.
기도는 하나님이 몰랐던 사실을 알려 드리는 일이 아니다. 완고한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이 부드럽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자신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정하셨다.
비가 오실 것을 하나님께서 뜻하셨다고 해서 농부의 파종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비와 씨앗과 농부의 수고를 함께 사용하여 열매를 맺게 하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구원하실 뜻뿐 아니라, 그 구원을 위하여 드려질 기도까지 섭리하신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무너뜨린 변수가 아니라, 그 계획 안에 포함된 은혜의 통로였다.
사울을 세운 일을 후회하셨다는 말씀
사무엘상 15장에는 매우 중요한 긴장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하신다(삼상 15:11). 그러나 같은 장에서 사무엘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한 장 안에 후회하시는 하나님과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함께 등장한다. 이것은 성경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성경 자체가 가르쳐 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불순종을 미리 몰랐기 때문에 왕으로 세운 일을 실수로 여기신 것이 아니다. 후회하셨다는 말은 사울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며, 그를 왕위에서 폐하시는 역사적 관계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시는 구속사의 목적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울은 변했고 그의 왕권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과 왕국의 계획을 변함없이 이루셨다.
하나님의 슬픔은 참되지만, 그 슬픔이 무지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아시면서도 그것을 냉담하게 바라보지 않으신다. 미래를 아신다는 것이 마음 아파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은 관계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을 감정도 반응도 없는 절대적 원리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눈물을 들으시고, 죄를 슬퍼하시며, 회개를 기뻐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행동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기도와 순종과 회개는 실제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미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다루지 않으시며, 살아 있는 언약의 관계 속에서 만나신다.
그러나 이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선한 분이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선하시기 때문에 죄에는 심판으로, 회개에는 용서로 응답하신다.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풍향계와 달리 등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등대의 빛은 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경고가 되기도 하고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돌이키심은 희망의 언어이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보다 희망을 준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불안정하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할 때 심판이 숙명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을 기계적으로 처벌하는 냉혹한 법칙이 아니다.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중보를 받으시며, 돌이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다.
그분의 뜻이 흔들려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용서하신다. 변덕 때문에 심판을 거두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재앙을 거두신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경고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겠다는 약속도 흔들리지 않는다.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어제와 다른 분이 되셨다는 뜻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돌아온 인간을 향해 다시 얼굴을 비추었다는 뜻이다.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드러날 때 태양이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가려졌던 빛이 다시 우리에게 닿은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도 그러하다.
돌아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이 돌아왔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던 하나님의 자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