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지옥에도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지옥에도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하늘에도 계시고 땅에도 계시며, 인간이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도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옥은 흔히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장소라고 설명된다. 그렇다면 지옥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유일한 공간인가.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말 어디에나 계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 대답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다. 하나님은 지옥에도 계신다. 그러나 천국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계시지는 않는다. 천국에서는 은혜와 생명과 기쁨으로 임재하시지만, 지옥에서는 거룩한 심판과 진노의 주권자로 임재하신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피해 갈 수 있는 장소가 없다고 고백한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8).

여기서 스올은 문맥상 죽은 자들의 영역을 가리킨다. 시편 기자의 핵심은 높음과 깊음,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의 어느 영역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간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한 장소에 있으면 동시에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 세계 전체를 초월하시면서도 모든 곳에 충만하게 계신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장소가 존재한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주권 바깥에 있는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조차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사탄의 왕국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사탄은 지옥을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그곳에서 심판받는 피조물이다. 지옥은 하나님이 패배하여 물러나신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최종적으로 집행되는 영역이다.

지옥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은혜의 부재이다

“지옥은 하나님과의 분리이다”라는 말은 일정한 의미에서 옳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정확하지 않다.

지옥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로운 임재이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베푸시는 위로와 기쁨, 교제와 평강이 거두어진 상태이다. 하나님은 심판자로 계시지만 아버지의 품처럼 경험되지 않으며, 빛으로 계시지만 그 빛은 기쁨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는 불이 된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악인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살후 1:9). 여기서 주의 얼굴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론적으로 사라지신다는 뜻이라기보다, 그분의 구원과 은총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태양은 같은 빛을 비추지만, 건강한 눈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고 병든 눈에는 고통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동일하시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분의 거룩함은 기쁨이 되고, 끝까지 그분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심판이 된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하나님의 유무만이 아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지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단순히 구분하기 쉽다. 그러나 더 정확한 차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있다.

천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분 안에서 기뻐하는 곳이다. 지옥은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있으면서도 그분과의 사랑의 교제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임재가 완전한 복이 되는 곳이며, 지옥은 하나님의 임재가 완전한 심판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요한계시록은 심판도 하나님의 앞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기록한다(계 14:10). 이 말씀은 지옥의 형벌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거룩한 심판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죄인은 하나님에게서 도망쳐 자신만의 영역을 얻는 것이 아니다. 지옥은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사는 자유의 왕국이 아니라, 끝까지 거부했던 하나님의 주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장소이다.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가는 상태에 넘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까지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은혜는 거부할 수 있어도 창조주의 통치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도 임재의 한 방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따뜻함, 위로, 평안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그런 방식으로 임재하신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죄인을 심판하는 두려운 불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불은 빛을 주고 몸을 덥히지만, 동시에 불순물을 태우고 악을 심판한다. 하나님의 거룩함도 그러하다. 천국에서 성도들은 그 거룩함을 찬양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죄인에게는 바로 그 거룩함이 두려움이 된다.

그러므로 지옥의 고통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기는 공허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자로 계시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위로는 없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있으며,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는 없지만 그분의 주권은 존재한다.

지옥은 인간이 선택한 최종적 고립이다

지옥을 단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억지로 밀어 넣는 감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함께 말한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은 원하면서도, 하나님 자신은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선물만 영원히 누릴 수는 없다.

지옥은 인간이 바라던 독립이 그 최종 형태로 주어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면 자유가 남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고립이 남는다.

나뭇가지가 나무를 떠나 독립을 얻는 순간, 그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르기 시작한다. 물고기가 물을 거부하여 육지로 나오는 순간, 속박을 벗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조건을 잃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도 그러하다.

사랑을 거부한 끝에는 고독이 남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인간은 그 사랑 안에서 존재하도록 창조되었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고통은 불의 이미지보다도 사랑의 관계를 영원히 상실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끝까지 자신을 닫은 인간이 그 사랑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은 바깥에서만 잠긴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굳게 닫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옥의 심판을 인간의 심리 상태로만 축소한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심판과 인간의 책임을 모두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은 그 선택을 공의롭게 판단하신다.

십자가는 지옥의 두려움을 보여 준다

지옥이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를 잃는 것이라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그 심판의 어둠을 대신 짊어지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성부와 성자의 존재론적 연합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분열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버림받음의 고통을 경험하셨다.

십자가는 지옥이 사소한 교리적 위협이 아님을 보여 준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 심판에서 건지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곳까지 내려오셨는지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버림받지 않도록 버림받음의 어둠을 지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기쁨으로 보도록, 그분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진 듯한 밤을 견디셨다.

하나님의 편재는 위로이면서 경고이다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큰 위로이다. 병실에도 계시고, 감옥에도 계시며, 외로운 방과 죽음의 골짜기에도 계신다. 우리가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같은 진리는 죄인에게 경고가 된다. 인간은 죽음으로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으며, 어둠 속에 숨어도 그분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편재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한곳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이 영원한 기쁨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이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된다.

지옥에도 하나님은 계신다. 그러나 구원의 품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운 재판장으로 계신다. 은혜로운 교제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진노와 주권으로 계신다.

지옥은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진 장소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그분의 공의 앞에 서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순히 우리를 불에서 건져 내는 소식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피하던 죄인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얼굴을 기뻐하는 자로 변화시키는 소식이다.

천국의 가장 큰 복은 금으로 된 거리도, 눈물이 없는 삶도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다. 반대로 지옥의 가장 깊은 비극은 고통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한 기쁨으로 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결국 인간의 영원은 한 질문으로 모인다.

하나님의 얼굴이 나에게 기쁨인가, 두려움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 얼굴은 정죄의 불이 아니라,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자를 비추는 아버지의 빛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일 대표기도문 2025년 11월 23일

남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7가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