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별이 없어도 부족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찬양이 없어도 영광스러우신 분이라면 왜 굳이 우주를 펼치고 생명을 지으셨을까. 하나님께 외로움이 있었던 것일까. 하나님의 완전함 안에 채워야 할 빈자리가 있었던 것일까.
성경의 대답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부족해서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야 완전해지는 분이 아니시며, 세상이 없어도 영원히 충만하신 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창세 전부터 완전한 사랑과 기쁨 가운데 계셨다.
그러므로 창조는 결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충만함에서 흘러나온 사건이다. 메마른 우물이 물을 구하듯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가득 찬 샘이 넘쳐흐르듯 생명을 부르셨다.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 수밖에 없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창조는 필연이 아니라 자유로운 뜻이었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한다(롬 11:36). 세계는 우연히 떨어져 나온 신의 조각이 아니며, 하나님과 맞서 존재하는 영원한 물질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창 1:3).
창조는 강제로 밀어낸 명령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었다. 없던 것이 부름을 받고 나타났으며, 침묵하던 허무 속에 색과 소리와 계절이 태어났다. 바다는 깊이를 얻었고, 나무는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으며, 인간은 흙으로 지어져 하나님의 숨을 받았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선물이다. 우리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던 우리에게 존재할 자리를 내어 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사 43:7).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박수를 필요로 하는 허영심 많은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영광을 구하면 교만이 된다. 인간은 선과 아름다움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선과 생명과 아름다움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은 피조물이 가장 참되고 아름다운 실재를 보도록 하시는 일이다.
태양이 빛을 비추는 것은 어둠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빛은 본성상 비춘다. 꽃이 향기를 내는 것은 행인의 감탄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명이 충만하기에 향기가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영광도 그러하다. 창조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색을 입고, 질서를 얻으며, 생명의 형태로 드러난 무대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시 19:1).
우주의 광대함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하고, 들꽃의 섬세함은 그분의 세밀한 사랑을 말한다. 계절의 순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며, 인간의 이성과 사랑은 인격적 창조주의 흔적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기쁨은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을 밀어내야 자유로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지음받았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고,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릴 때 살아 있듯, 인간은 창조주와 올바른 관계 안에서 가장 인간다워진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잃는 일이 아니라, 삶이 지어진 목적을 회복하는 일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의 목적이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을 보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기뻐하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히 창조 세계를 구경하는 관객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땅을 돌보며 다스리는 책임을 맡기셨다(창 1:26-28).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외모를 닮았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고, 그분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부름받은 존재이다.
왕이 먼 지역에 자신의 형상을 세워 통치를 나타내듯, 하나님은 인간을 땅에 세워 자신의 정의와 사랑, 지혜와 돌봄을 드러내게 하셨다. 인간은 창조 세계의 약탈자가 아니라 청지기이며, 생명을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꾸고 보존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글을 쓰고, 밭을 일구며, 아이를 돌보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모두 창조의 사명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완성된 장식품으로만 주시지 않았다. 인간이 사랑과 수고로 그 아름다움에 참여하도록 여백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은 관계를 나누기 위해 인간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도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노동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맺도록 지음받은 인격적 존재이다.
성경의 첫 장면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동산을 맡기고, 안식을 함께 누리신다. 성경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하나님은 인간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계 21:3).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이야기이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임재는 성막과 성전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이 멀리 떨어져 서로 바라보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거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기뻐하는 데 있었다.
죄가 창조의 목적을 실패하게 했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지만, 하나님 없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 했다. 창조 세계는 죄로 인해 신음하게 되었고, 사랑은 소유욕으로, 다스림은 착취로, 자유는 반역으로 변질되었다.
그렇다면 창조는 실패한 것인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골 1:20).
구원은 창조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일이 아니다. 죄로 망가진 창조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일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와 물질세계가 버림받지 않았다는 선언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끝내 완성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창조의 마지막은 폐허가 아니라 새 창조이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를 살아간다. 꽃은 피지만 시들고, 사랑은 시작되지만 이별을 만나며, 생명은 태어나지만 죽음을 향한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의 깨어짐이 창조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계 21:5). 처음 창조 때 혼돈 위에 운행하시던 성령은 새 창조에서도 죽은 것을 살리시며, 처음 빛을 부르셨던 하나님은 마지막에도 어둠을 몰아내실 것이다.
창조의 첫 문장은 빛으로 시작했고, 창조의 마지막 장면도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빛으로 끝난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외로워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미 사랑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에 생명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영광이 부족해서 찬양받으려 하신 것이 아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선하심 안에서 기뻐하도록 세상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창조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형상을 지닌 자녀로 부르시고, 창조 세계를 함께 돌보는 청지기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의 가장 깊은 대답은 사랑이다.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자에게 존재를 주고, 반역한 자를 찾아가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창조적 사랑이다.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먼지가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불렸고, 그분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분의 사랑을 알고 반영하도록 지음받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외로움을 채우는 방이 아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선하심이 피조물에게 흘러나온 정원이다. 비록 지금은 가시와 눈물이 뒤섞여 있지만, 정원사는 자신의 정원을 버리지 않으신다.
마침내 창조는 처음의 목적에 도달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가운데 거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모든 피조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목소리로 창조주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