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천사와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성경을 읽다 보면 창세기 1장에는 해와 달, 바다와 식물, 동물과 인간의 창조가 차례대로 기록되어 있지만 천사의 창조 장면은 따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탄 역시 창조되었다는 설명 없이 창세기 3장의 뱀을 통하여 갑자기 등장한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언제 창조되었으며, 사탄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만들어졌을까.
성경은 정확한 날짜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말한다. 천사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부터 존재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사탄 또한 하나님과 맞서는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창조주께 반역한 유한한 존재이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적 피조물이다
골로새서는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들과 주권들과 통치자들과 권세들도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한다(골 1:16).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들과 여러 영적 권세들은 천사적 존재들을 포함한다. 천사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생명과 능력을 받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영적 사역자이다.
히브리어로 천사는 말라크(מַלְאָךְ), 헬라어로는 앙겔로스(ἄγγελος)인데, 두 단어 모두 기본적으로 사자 또는 전달자라는 뜻이다. 천사의 본질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날개 달린 신비한 모습보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수행하는 사명에 있다.
천사는 인간보다 강한 존재이지만 전능하지 않으며, 많은 것을 알지만 전지하지 않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지는 못한다. 천사는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피조물이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먼저 창조된 것으로 보인다
천사가 정확히 어느 날 창조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외쳤다는 표현이 나온다(욥 38:4-7).
여기서 새벽 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반적으로 천사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땅의 기초가 놓일 때 이미 천사들이 존재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성경학자는 천사들이 적어도 인간보다 먼저, 어쩌면 지상의 창조 질서가 완성되기 전에 창조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상세한 연대표로 설명하지 않는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 속에 영적 하늘과 천사들의 창조까지 포함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천사의 창조도 넓은 의미에서 육일 창조 안에 포함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날짜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다
성경이 천사의 창조 날짜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구원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관심은 천사의 호기심 어린 세계를 펼쳐 보이는 데 있지 않고, 천사조차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는 피조물임을 밝히는 데 있다.
천사는 하나님의 경쟁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종이며, 구원받을 성도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는 영이다(히 1:14).
하나님은 사탄을 악하게 창조하셨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고 선언한다(창 1:31). 따라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악하고 거짓된 사탄을 창조하셨다고 볼 수 없다.
사탄은 본래 선하게 창조된 천사적 존재였으나,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교만과 반역으로 하나님을 떠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악한 존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선하게 창조된 존재가 자신의 의지를 왜곡하여 악하게 된 것이다.
악은 하나님이 만드신 또 하나의 물질이 아니다. 선한 것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설 때 생겨나는 부패와 결핍이다. 썩음이 과일과 별개의 창조물이 아니라 과일의 생명이 무너진 상태인 것처럼, 사탄의 악도 창조된 선한 의지가 하나님에게서 이탈한 결과이다.
유다서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언급하며(유 1:6), 베드로후서는 범죄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한다(벧후 2:4). 이 본문들은 일부 천사들이 하나님께 반역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탄은 언제 타락했는가
사탄의 타락 시점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인간을 유혹할 때는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짓말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탄의 반역은 천사의 창조 이후이며, 적어도 아담과 하와가 유혹받기 전에는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천사가 창조된 직후 곧바로 반역했는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타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은 그 간격을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이 인간보다 먼저 죄를 범했고, 인간을 자신과 같은 반역의 길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마귀를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다(요 8:44). 여기서 처음부터라는 말은 사탄이 창조될 때부터 악했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 역사 초기부터 거짓과 죽음의 세력으로 활동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은 사탄의 타락을 말하는가
전통적으로 이사야 14장의 계명성 또는 새벽의 아들과 에스겔 28장의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에 관한 표현은 사탄의 교만과 타락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의 직접적인 역사적 대상은 각각 바벨론 왕과 두로 왕이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과 영광에 취하여 신과 같이 높아지려 했던 인간 통치자들이다.
그럼에도 이 본문들에 나타난 교만, 자기 높임, 영광에서의 추락은 사탄적 반역의 본질을 비추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말씀을 사탄의 창조와 타락을 직접 기록한 연대기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라틴어 루키페르(Lucifer)는 본래 이사야 14장에 나타나는 새벽별을 번역한 표현이다. 이것이 후대 전통에서 사탄의 타락 이전 이름처럼 사용되었지만, 성경은 루키페르를 사탄의 고유한 본명이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사탄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탄(שָׂטָן)은 본래 대적자, 고발자라는 뜻이다. 마귀를 뜻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는 중상하는 자, 비방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사탄은 처음부터 주어진 아름다운 창조의 이름이라기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게 된 그의 타락한 역할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그는 하나님처럼 창조할 수 없고 생명을 줄 수도 없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선을 뒤틀고, 진리에 거짓을 섞으며,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다. 사탄은 창조자가 아니라 모방자이며,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생명을 훼손하는 기생적 존재이다.
사탄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선한 하나님과 악한 사탄이 비슷한 힘으로 영원히 싸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적 세계관이 아니라 이원론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사탄은 유한하다. 하나님은 미래를 완전히 아시지만 사탄은 그렇지 못하다. 사탄이 활동하는 것조차 하나님의 주권과 허용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욥기에서 사탄은 마음대로 욥을 해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허락 아래 제한된 범위에서만 행동한다. 이는 사탄의 악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지만, 그 악이 하나님의 통치를 넘어설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은 같은 존재인가
전통적 기독교 해석에서는 귀신들을 사탄과 함께 타락한 천사들로 이해해 왔다. 복음서에서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에게 정해진 심판의 때가 있음을 알고 있다(마 8:29).
요한계시록 12장은 용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여 땅으로 내쫓기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장면은 상징적 묵시이며, 이를 천사 타락의 정확한 시간표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탄에게 속한 영적 세력이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모든 세부를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은 악한 영들이 하나님과 대등한 신들이 아니라 심판을 기다리는 반역한 피조물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왜 천사의 창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가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강한 호기심을 가진다. 천사의 계급과 이름, 사탄의 타락 시점과 방식에 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말한다.
성경의 중심은 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섬긴다. 타락한 천사들도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 떨며,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의 과거에 관한 모든 세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천사 창조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난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먼저 창조된 것으로 보인다. 사탄은 선하게 창조된 천사적 존재였으나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역했고,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이미 악한 대적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시작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끝을 아는 일이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경쟁자가 아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마침내 불못에 던져질 심판받은 피조물이다(계 20:10).
창세기에서 뱀은 인간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창 3:15).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성취되었다.
천사의 창조 시점은 신비 속에 남아 있다. 사탄의 타락 과정도 모든 세부가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경의 결론은 모호하지 않다.
처음에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마지막에도 하나님이 승리하신다. 사탄은 잠시 어둠을 드리울 수 있지만 빛의 근원을 끌 수는 없다. 그는 역사를 흔들 수는 있어도 역사의 마지막 문장을 쓸 수는 없다.
그 마지막 문장은 사탄의 것이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