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기도가 없어도 일하실 수 있는데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기도가 없어도 일하실 수 있는데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 없이도 일하실 수 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실 때 천사는 횃불을 들지 않았고, 바다가 갈라질 때 인간은 물길을 설계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홀로 창조하시며, 홀로 구원하시고, 누구의 조언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신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이미 뜻하셨다면, 기도는 정해진 결과 앞에서 되풀이하는 독백에 불과한가.

그러나 성경에서 기도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인간에게 요청하시는 보조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뜻 안으로 부르시는 은혜의 통로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정보를 알려 드리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8). 그러므로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 사정을 보고하거나, 그분이 놓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이 말하기 전에 마음의 탄식을 아시며,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그 무게를 헤아리신다.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어떤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지 모두 아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물으신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는 하나님께서 모르시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말로 꺼내기 전에는 욕망과 필요를 구별하지 못한다. 기도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상처 입은 자존심의 보상인지, 두려움에서 비롯된 집착인지 드러난다.

기도는 하나님의 무지를 채우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혼란을 밝히는 빛이다.

하나님은 목적뿐 아니라 방법도 정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할 때 흔히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기로 작정하셨다면 기도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고, 이루지 않기로 하셨다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를 그렇게 기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과만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수단도 함께 정하신다.

하나님께서 곡식을 주시지만 농부는 씨를 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시지만 우리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믿음을 주시지만 누군가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기도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실 것을 뜻하시면서, 동시에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그 은혜를 주시기로 뜻하신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된 섭리의 도구이다. 비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해서 농부의 밭갈이가 불필요하지 않듯, 하나님의 뜻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기도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꾸는 주문이 아니다

기도를 하나님의 뜻을 꺾는 기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많은 말을 반복하거나 강한 감정을 쏟아내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굴복하시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인간의 뜻을 하늘에 관철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일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참된 기도는 하나님을 내 계획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뜻 안으로 옮겨 놓는다. 처음에는 상황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지만, 깊은 기도 속에서는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를 단지 자기 변화의 심리적 과정으로만 축소해서도 안 된다. 성경은 기도를 통해 실제 사건이 일어나고, 병든 자가 회복되며, 갇힌 자가 풀려나고, 나라의 역사가 달라졌다고 증언한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실제 통로가 된다.

기도는 관계의 언어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의 형편을 이미 알아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지만, 자녀가 마음을 열어 말하기를 원한다. 말은 정보 전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언의 피조물로 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녀로 삼으셨다.

기도는 종이 왕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는 행위이기 전에, 자녀가 아버지께 마음을 여는 행위이다. 기도의 중심에는 응답 이전에 만남이 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의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시는 데만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하시는 데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물을 달라고 말할 때, 물만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보호받고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경험한다. 기도하는 사람도 응답만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기도는 인간의 의존성을 고백하게 한다

죄의 뿌리에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성취하며, 자신의 힘으로 삶을 붙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는 그 교만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음식이 하늘에서 곧바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수고하여 얻은 빵조차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햇빛과 비, 건강과 노동할 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무신론자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 기도는 인간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임을 기억하게 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패배의 자세처럼 보이지만, 신앙 안에서는 가장 진실한 인간의 자세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신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참여시킨다

하나님은 홀로 일하실 수 있지만, 홀로 일하기만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하여 세상을 돌보신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하여 기도했고,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했으며,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다. 초대교회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감옥 문이 열렸다.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여 자신의 사역에 참여시키셨다는 뜻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텃밭을 가꾸는 것은 아이의 도움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에게 씨앗을 심고 열매를 기다리는 기쁨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아이의 손은 서툴지만, 부모는 그 손을 자신의 일에 참여시킨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들려주신 작은 삽과 같다. 세상을 경영하는 힘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땅을 일구도록 부르신다.

중보기도는 타인의 짐을 하나님 앞으로 옮기는 사랑이다

기도는 자기 문제에만 몰두하는 행위가 아니다. 성경의 기도는 언제나 타인을 향해 열린다. 아픈 자, 가난한 자, 억눌린 자, 교회와 나라,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내 힘으로 구원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없애 줄 수 없지만,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다. 멀리 있는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에도, 기도는 그 사람 곁에 마음을 앉혀 놓는다.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된다. 진실한 중보기도는 결국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한다. 배고픈 자를 위해 기도했다면 빵을 나누게 되고, 외로운 자를 위해 기도했다면 그의 곁을 찾게 된다.

기도는 행동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을 낳는 뿌리이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정결하게 한다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는 원하는 것이 많다. 성공하게 해 달라고, 관계를 회복시켜 달라고,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오래 기도하다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나중에는 이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처음에는 고난을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지만, 어느 순간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도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이렇게 깊어졌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기도는 소원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소원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다. 욕망의 탁한 물이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가라앉고, 마침내 가장 깊은 소원이 드러난다.

하나님, 내 뜻보다 주님을 더 원합니다.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기도의 가장 큰 난제는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가보다, 왜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으시는가에 있다.

성경은 모든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에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를 세 번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가시를 제거하는 대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고후 12:8-9).

하나님의 응답에는 허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절도 있고, 기다리라는 침묵도 있으며, 우리가 구한 것과 다른 형태의 응답도 있다.

우리는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닫힌 문 앞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시기도 한다.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했지만, 치유보다 더 깊은 평안을 주실 때도 있다.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고난을 통과할 힘을 주실 때도 있다.

응답되지 않은 듯한 기도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입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담기는 향과 같다(계 5:8). 우리는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인가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조심스럽게 말하면 그렇다. 성경은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실제로 행동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도가 변덕스러운 하나님을 선하게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기도는 효력을 가진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이 기도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면 기도는 공허한 외침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조종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를 귀하게 여기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우리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기도가 없으면 일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기도 없이 일하실 수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우리를 자신의 뜻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교만을 낮추고 의존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욕망을 정결하게 하고 사랑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설득하는 인간의 기술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에게 허락하신 관계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아신다. 그러나 우리가 말할 때 들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돕지 않아도 일하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자신의 일에 참여시키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은혜를 위한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을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손 안에서 다시 자신의 몫을 받아 든다.

기도하기 전에는 모든 일이 나에게 달린 것처럼 두려워했지만, 기도하고 나면 모든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깨우는 종소리가 아니다. 잠들어 있던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셨다. 기도를 통해 비로소 우리가 그 일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며, 두 손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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