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나요?

 

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나요?

기도했는데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병은 낫지 않고,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며,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기다리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신가요?”

“제가 잘못 기도한 것인가요?”

“믿음이 부족해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인가요?”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그대로 주신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으시지만 모든 요구를 허락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뿐 아니라 그 말 아래 숨어 있는 두려움과 욕망, 상처와 필요까지 아십니다. 우리는 한 가지 결과만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보십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위험한 물건을 달라고 할 때 부모는 그 요구를 분명히 듣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주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거절로 보이지만 부모에게는 보호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반드시 붙들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관계가 우리를 더 깊이 상하게 할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구하지만, 그 성공이 교만과 탐욕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훗날 돌아보면 하나님의 보호였음을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거절의 이유를 이 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도는 끝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믿음은 억지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오래 기다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꿈을 받았지만 노예와 죄수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도 즉시 출애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환경과 우리의 내면을 준비하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씨앗은 땅에 심긴 뒤 한동안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흙 아래에서 껍질이 갈라지고 뿌리가 내립니다. 우리가 결과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다림을 무조건 “곧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낙관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소원은 기다린 뒤 이루어지지만, 어떤 소원은 끝내 다른 길로 인도됩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결과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보다 먼저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십니다

기도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되지만, 종종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바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래 기도하다 보면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더 깊어지면 “제 뜻을 주님의 뜻에 맞게 바꾸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가 떠나기를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남았지만, 문제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셨지만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으로 나아갔습니다.

기도의 가장 깊은 응답은 언제나 환경의 변화만이 아닙니다. 고난을 견디는 힘, 용서할 수 있는 마음,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 다시 살아갈 용기가 주어지는 것도 응답입니다.

잘못된 동기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잘못 구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사랑뿐 아니라 집착이 섞일 수 있고, 사명뿐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지연될 때 자신의 동기를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것을 왜 이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까?”

“나는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합니까?”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모든 기도를 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며,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역시 잘못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병이 낫지 않았다고 환자의 죄를 찾거나,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부모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흔히 “예”, “기다려라”, “아니다”로 설명합니다. 이 표현이 모든 기도의 신비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거절로 응답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병든 아이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아이는 죽었습니다. 바울은 가시가 제거되기를 구했으나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깊이 동행한 사람에게도 거절된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언제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한 소원과 버림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실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녀를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정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오래 응답되지 않으면 기도할 말마저 사라집니다. 그때 억지로 감사하거나 강한 믿음을 연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지쳤습니다.”

“왜 침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기대하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이러한 말도 기도입니다. 시편에는 찬양뿐 아니라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탄식이 반복됩니다. 탄식은 믿음의 반대가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말하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이렇게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능히 이루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 판단보다 주님의 지혜가 깊음을 믿습니다. 이루어 주신다면 감사하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신다면 견딜 힘을 주시며, 거절하신다면 주님을 원망하며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응답의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상황의 변화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원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는 분이 아니라, 친히 고통과 죽음 속으로 들어오신 분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왜 어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무관심해서 침묵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반드시 버려진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기도는 때가 지연되고, 어떤 기도는 다른 방식으로 응답되며, 어떤 기도는 거절됩니다. 또 어떤 기도는 이 땅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외면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원하는 것을 주시고, 때로 원하는 것을 내려놓게 하시며, 때로는 그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반드시 얻어 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소원을 정직하게 내놓고, 그 결과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지혜에 맡기는 관계입니다.

믿음은 “제가 원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확신만이 아닙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하시며,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빨리 기도를 실패로 판정하지 마십시오. 울어도 되고, 질문해도 되며, 잠시 침묵해도 됩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힘이 약해진 날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손은 약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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