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지와 인간의 악은 모순 아닌가요?

하나님의 전지와 인간의 악은 모순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면, 인간이 저지를 악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런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악을 미리 아시면서도 막지 않으셨을까요? 더 나아가 인간의 악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면,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이 질문은 기독교 신앙이 오래도록 씨름해 온 가장 어려운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은 하나님이 악을 완전하게 아시고 주권적으로 다스리시지만, 악의 창조자나 도덕적 원인은 아니시며, 인간은 자신의 악한 선택에 실제적인 책임을 진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악을 아신다는 것과 악을 행하신다는 것은 다릅니다

먼저 지식과 행위를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떤 악을 저지를지 아신다고 해서, 그 지식이 인간에게 악을 강제로 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 계획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가 곧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경우는 단순한 관찰자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 악을 막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셨는가”가 아니라 “왜 아시면서도 허용하셨는가”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악을 명령하거나 기뻐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악에게 시험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악으로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전지는 악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외부의 강제에 의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판단을 따라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과 원하신 것은 같지 않습니다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있고, 인간의 악을 막지 않고 허용하시면서도 그 악을 심판하고 선한 목적에 사용하시는 섭리적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살인은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이 저지른 배신과 불법 재판과 살인을 사용하여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렇다고 유다의 배신과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과 빌라도의 불의가 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악한 의도로 행동했고 자신의 죄에 책임을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악보다 더 크셨으며, 악한 행위조차 구원의 도구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으십니다. 악을 그대로 악이라 판단하시면서도, 악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악을 즉시 막지 않으시나요?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발생하기 전에 즉시 막으신다면, 세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악한 생각을 품는 순간마다 의지를 정지시키고, 거짓말하려는 사람의 입을 닫으며,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서 인간은 도덕적 책임을 지닌 인격적 존재라기보다 지속적으로 통제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순종도 강제된다면 참된 사랑과 순종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인간의 자유만으로 모든 악의 허용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재해와 질병, 어린아이의 고통처럼 개인의 직접적인 선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악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모든 고통의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욥기에서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비밀을 설명하기보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 세계를 다스리시는 자신의 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모든 악의 이유를 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악까지도 방치하지 않으시며, 마지막에는 심판하고 바로잡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한가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악을 행하기 때문에 책임을 집니다. 악한 사람은 대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분노와 탐욕과 교만을 따라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택을 미리 아시고 섭리 안에서 사용하신다고 해서 인간의 의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려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죄를 짓습니다.

십자가 사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주셨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의 책임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책임은 성경에서 동시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논리로는 둘의 관계를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성경은 하나를 인정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지가 악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미리 아신다고 해서 인간의 고통이 단순한 각본이나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실제이고, 피해자의 눈물도 실제이며,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도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멀리서 냉정하게 관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악에 의해 고난받는 자리로 들어오셨습니다. 배신당하시고, 모욕당하시며, 불법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말로만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결과를 자신이 짊어지셨습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악에서 선을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이 행한 가장 큰 불의가 하나님의 손에서 가장 큰 구원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악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악보다 크시며, 악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을 최종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전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은 때로 두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악도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배신과 폭력을 뒤늦게 발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역사를 심판과 회복의 방향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는 악이 너무 강해 보일 때 세상이 통제 불가능한 혼돈 속에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는 악이 그분의 지식 밖에서 몰래 자라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악이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렇다고 신자는 악 앞에서 수동적으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섭리를 운명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통하여 불의에 저항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진실과 정의를 세우게 하십니다.

모순이라기보다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와 인간의 악 사이에는 우리가 완전히 풀어내기 어려운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다스리시지만 악의 창조자가 아니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지만 악을 미워하시며, 마침내 심판하십니다.

이 모든 관계를 하나의 철학적 공식으로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과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모순은 하나님이 동일한 의미에서 악을 원하면서 동시에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도덕적으로 기뻐하거나 명령하지 않으시지만, 일정한 기간 허용하시고 심판하시며, 자신의 선한 목적을 위해 제어하십니다.

악의 마지막 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와 인간의 악은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왜 특정한 악이 허용되었는지 언제나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심각한 고통 앞에서는 이론적인 설명보다 눈물과 침묵과 동행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악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악이 최종적인 현실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아시면서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어 죄를 담당하게 하셨고, 부활을 통해 죽음과 악의 권세가 마지막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숨겨진 악을 드러내고, 억울한 자를 위로하며,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의 이유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악을 짊어지시고, 부활로 악을 이기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악은 실제이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는 크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은 더 큽니다.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 문장은 악한 인간이 아니라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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