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있나요?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있나요?

네, 성경에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기도한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를 들으시지만, 모든 요청에 우리가 기대한 결과를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과 “내가 구한 것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시지만, 사랑과 지혜에 따라 허락하시기도 하고, 기다리게 하시기도 하며, 때로는 거절하시기도 합니다.

바울의 가시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도록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것이 질병인지, 박해인지, 다른 종류의 고통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울에게는 매우 힘겨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문제의 제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문제 속에서 견딜 은혜를 주셨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바울의 믿음은 달라졌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고통이 사라지는 형태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보다 더 큰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응답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고, 누구보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간구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응답이 기도자의 공로나 신앙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오랫동안 충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자신의 소원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이를 위한 기도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병들었을 때 금식하며 밤새도록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는 혹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아이를 살려 주실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죽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그가 기대한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깊이 슬퍼했지만, 아이가 죽은 뒤 일어나 몸을 씻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아픕니다. 기도했다고 해서 모든 질병이 낫고, 모든 죽음이 연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죽음을 피하는 보증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과 상실 앞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도 잔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언제나 현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데 있습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와 듣지 않으신 기도는 다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은 반드시 요청대로 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의 요구를 분명히 듣고도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다른 결정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는 것이며, 때로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고, 때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막으시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거절의 이유를 이 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도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은 채 남기도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이유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의 성품을 붙드는 일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가 언제나 죄 때문은 아닙니다

성경은 죄와 이기적인 욕망이 기도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시편도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자신의 동기와 삶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응답 지연을 특정한 죄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가시가 제거되지 않은 것은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거나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잔이 지나가지 않은 것도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해서 믿음이 약하다고 단정하거나,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의 죄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짐을 얹을 수 있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기도도 있습니다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응답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지만 노예 생활과 감옥을 거친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애굽에서 부르짖은 뒤에 출애굽을 경험했습니다.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환경과 우리의 내면을 준비시키실 수 있습니다.

씨앗을 심은 뒤 땅 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씨앗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거절하십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대부분 지금 당장 보이는 필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와 영원을 보십니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반드시 붙들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 관계가 우리를 파괴할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성공을 구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교만과 욕망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그 시간을 통해 겸손과 긍휼을 배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고난을 쉽게 합리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시야가 제한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위험한 것을 주지 않을 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거절은 아이가 알지 못하는 위험을 아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거절도 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도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깊은 목적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오래 기도하는 동안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집착했던 마음을 보게 되고, 성공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자신을 깨닫기도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 앞에서 정결해지는 과정입니다.

어떤 기도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어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기도는 환경을 바꾸지 않지만, 그 환경 속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영혼을 깊게 만듭니다.

응답되지 않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먼저 솔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이러한 탄식도 기도입니다. 시편의 기도는 아름다운 확신만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질문과 눈물, 두려움과 항의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을 조금 넓힐 수 있습니다.

“제가 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이루어 주십시오.”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기다려야 한다면 지치지 않을 은혜를 주십시오.”

“문제를 제거하지 않으신다면 감당할 힘과 함께할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이것은 믿음을 포기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더 깊은 믿음의 기도입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도 실패한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했는데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응답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도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지만 다른 뜻을 이루셨을 수 있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문제보다 더 깊은 은혜를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의 이유와 결과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한 분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난 밖에 머물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고통과 죽음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되지 않는 기도 앞에서 너무 빨리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단정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결론 내리지도 마십시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고 그분 앞에 머무는 것 자체가 믿음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을 받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시며, 때로는 기도를 통해 현실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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