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몸, 동일한 원자,
죽은 사람의 원자가 다른 사람의 몸이 되었다면 어떻게 부활합니까?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몸을 이루던 물질은 자연 속으로 흩어지고, 식물과 동물의 일부가 되며,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 죽은 사람이 부활할 때 하나님은 어느 사람에게 그 원자를 돌려주시는 것입니까. 한 원자가 여러 사람의 몸에 속했던 적이 있다면, 부활의 몸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이 질문은 부활의 몸이 지금 몸의 모든 원자를 그대로 되찾아야만 같은 몸이 되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활을 원자 하나하나의 회수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활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의 완전한 동일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다시 살리시는 인격적·신체적 연속성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몸의 물질은 계속 바뀝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도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끊임없이 교환합니다.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숨을 쉬고, 몸속의 세포는 생성되고 소멸합니다. 어린 시절의 몸과 노년의 몸은 물질적으로 크게 달라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바뀌어도 동일한 인격과 생명의 연속성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 물이 바뀌지만 우리는 같은 강이라고 부릅니다. 나무도 흙과 물에서 새로운 물질을 받아 성장하지만 같은 나무입니다. 동일성은 모든 물질 입자가 그대로 남아 있는 데 있지 않고, 생명과 형상과 역사와 관계의 연속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몸이 현재 몸과 동일하려면 모든 원자가 정확하게 같아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은 물질을 교환하면서 여전히 우리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부활은 시신의 단순한 복구가 아닙니다
부활을 죽기 직전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소생과 다릅니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살아났지만 다시 늙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의 몸은 죽기 이전의 생물학적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셨으며, 죽음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셨습니다.
성도의 부활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부활은 낡은 몸을 겨우 수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썩을 몸을 썩지 않을 몸으로, 약한 몸을 강한 몸으로, 욕된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일으키는 사건입니다(고전 15:42-44).
하나님은 죽기 직전의 질병과 노화와 상처까지 그대로 복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사람의 몸을 죽음과 부패에서 해방하여 영화롭게 하십니다.
바울은 씨앗의 비유로 부활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몸을 설명하면서 씨앗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 15:36-38).
씨앗과 싹은 모습이 다릅니다. 작은 씨앗이 땅에 묻힌 뒤 줄기와 잎과 열매를 가진 식물로 자랍니다. 외형은 크게 달라졌지만, 씨앗과 식물 사이에는 분명한 생명의 연속성이 있습니다.
부활한 몸도 현재의 몸과 완전히 똑같지도 않고,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를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은 같은 사람의 몸이라는 점에서 연속됩니다. 그러나 죽음과 질병과 죄의 영향을 벗어난 영화로운 몸이라는 점에서는 다릅니다.
부활은 동일한 몸의 변화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혀 관계없는 낯선 몸을 주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변화시키신다고 말합니다. 썩는 것으로 심고 썩지 않는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심어지는 것과 살아나는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동일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애벌레와 나비는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생명의 연속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부활은 자연적 변태보다 훨씬 크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창조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몸을 부정하지 않으시면서, 죽음이 다시는 지배하지 못할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사람의 동일성은 원자의 소유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 이유는 특정한 원자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동일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격, 몸의 역사, 기억과 책임,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익명의 물질 덩어리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뒤에도 그들의 이름과 인격은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2). 이것은 죽음이 하나님께서 한 사람과 맺으신 관계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지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분자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부활의 가능성은 인간의 물질이 얼마나 잘 보존되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그 사람을 기억하시고 다시 부르실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도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땅의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창 2:7).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 죽은 몸을 다시 살리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자연이 스스로 수행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새 창조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롬 4:17).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원자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분이 아닙니다. 물질 자체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며, 원하시면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여도 그 사람의 참된 몸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화재로 몸이 사라진 사람, 바다에서 죽은 사람, 수천 년 전에 흙으로 돌아간 사람도 하나님의 부활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부활이 시신의 물질적 보존 상태에 달려 있다면 화장되거나 몸이 훼손된 사람은 불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바다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준다고 말합니다(계 20:13). 죽은 장소나 몸의 상태가 하나님의 부활 능력을 제한하지 못합니다.
같은 원자가 여러 사람에게 속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원자가 한 사람의 몸에서 흙으로 돌아간 뒤 식물이나 동물에 흡수되고, 다시 다른 사람의 몸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자는 부활 때 누구에게 속해야 합니까.
이 문제는 부활을 원자 재조립으로 이해할 때만 발생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동일성이 원자 하나하나에 달려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특정 원자를 누구에게 배정하실지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속했던 모든 물질을 다시 찾아 모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시면서도 그 사람의 몸과 인격의 연속성을 온전히 보존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수리하면서 낡은 벽돌 일부를 새 벽돌로 바꾸었다고 전혀 다른 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기의 줄과 부품을 교체해도 같은 악기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집이나 악기보다 훨씬 깊은 인격적 존재입니다. 이 비유들은 물질적 구성 요소가 완전히 같지 않아도 동일성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부활의 동일성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여도 기억과 성격이 모두 사라지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의 부활은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바로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28). 무덤에 들어간 사람과 부활하는 사람은 동일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도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과 닮은 복제품을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십니다.
그 동일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원자의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입니다. 사람은 죽은 자의 몸을 잃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부활은 도저히 이어 붙일 수 없는 단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창조하신 사람을 다시 부르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름을 불러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듯이, 마지막 날에도 하나님은 익명의 물질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영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몸도 구원받습니다
그렇다면 몸의 물질이 달라질 수 있다면, 굳이 몸의 부활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완전히 새로운 몸을 입히는 것이라면 현재의 몸은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은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 사이에 실제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부활은 영혼이 다른 육체를 빌려 입는 환생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순종했던 바로 이 사람의 몸을 구속하십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8:11). 몸은 버려지는 껍데기가 아닙니다. 구원의 대상입니다.
다만 몸의 동일성이 모든 물질 입자의 동일함에 달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몸과의 연속성을 유지하시면서 그것을 영화로운 새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부활은 몸의 폐기가 아니라 몸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을 보여 줍니다
부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철학적 가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몸과 연속성을 가졌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았고,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죽을 육체로 되돌아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닫힌 문 안에 나타나셨고, 이전과 다른 영화로운 생명의 질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몸은 십자가에 달린 몸과 같은 몸이면서도 죽음을 초월한 몸이었습니다. 상처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았지만, 상처는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역사를 지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와 고통과 죽음이 남긴 파괴를 영화롭게 변화시키십니다.
부활한 몸은 죽음이 빼앗아 간 몸의 회복입니다
죽음은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 분리를 끝냅니다. 영혼이 육체에서 영원히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이 다시 결합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이름을 가진 사람, 관계와 역사를 가진 존재, 자신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로 보십니다.
따라서 부활은 흩어진 물질의 퍼즐을 맞추는 일이기 전에, 죽음에 빼앗긴 인간 전체를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부활의 방식은 신비이지만 부활의 약속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부활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원자를 사용하시는지, 현재 몸의 물질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부 사항을 지나치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사람은 바로 그 사람으로 부활합니다.
부활은 육체적인 부활입니다.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에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영화로운 몸입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부활 신앙은 흩어진 원자들이 우연히 다시 모이기를 기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를 처음 지으셨고,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아시며, 죽음 이후에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은 바람과 물을 따라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기억에서 흩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구성했던 원자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부활의 기적은 옛 원자를 정확히 회수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해체된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시 온전한 인간으로 부르시는 데 있습니다.
씨앗이 땅에서 썩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봄이 오면 전혀 새로운 영광으로 돋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죽음 속에 심어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썩지 않을 몸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과거 몸의 단순한 복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역사를 보존하시면서, 죽음이 다시는 손댈 수 없는 몸으로 완성하시는 새 창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