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하나님의 창조인데 왜 악이 등장했나요?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인데 왜 악이 등장했나요?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시며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빛과 어둠의 질서,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까지 모든 창조는 선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완전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악은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셨다면 악의 가능성도 미리 알고 계셨을 텐데, 왜 그런 가능성을 남겨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 않으시고, 누구도 악으로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어거스틴은 악을 선과 대등하게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을 선의 결핍, 곧 본래 선하게 창조된 것이 제자리에서 벗어나고 질서가 무너진 상태로 이해했습니다.

어둠은 빛과 동등한 물질이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썩음도 독립된 생명이 아니라 살아 있던 것이 부패한 상태입니다. 이와 같이 악은 하나님께서 별도로 만드신 어떤 물질이라기보다, 피조물이 하나님이 정하신 선한 질서를 거부할 때 나타나는 왜곡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의지와 욕망과 자유는 본래 선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그것을 하나님에게서 돌려 자기 자신을 절대화할 때 죄가 발생했습니다.

완전한 창조는 변화할 수 없는 창조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으시며 악을 행하실 수 없는 완전한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천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그 선함이 하나님 자신의 불변하는 선함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인으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하고 의로운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그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창조의 완전함은 인간이 기계처럼 악을 선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갈 모든 조건이 선하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죄는 창조의 결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선하게 주어진 자유를 피조물이 잘못 사용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악은 피조물이 하나님 없이 선을 얻으려 할 때 시작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선악과가 단지 맛있는 열매라고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첫 죄는 단순히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행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지혜와 자유를 누리면서도, 하나님 자신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선을 누리기보다 하나님 없이도 선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 쾌락, 지식, 권력, 인정이 제자리를 벗어나 하나님보다 높아질 때 선한 것도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도 집착으로 변할 수 있고, 권위도 지배욕으로 변할 수 있으며, 지식도 교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악은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선하게 창조된 것을 뒤틀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합니다.

자유가 있다면 악은 반드시 필요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죄를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도록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고 응답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자동 반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프로그램된 기계로 만들지 않으시고, 말씀을 듣고 신뢰하며 순종할 수 있는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다만 자유의지 하나만으로 악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고 막으실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다시 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의 가능성을 허용하셨습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완전한 철학적 해설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면서도, 자신의 지혜로운 섭리 안에서 악을 일정한 기간 허용하시고, 마침내 그것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셨다는 것은 악을 승인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허용과 승인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죄를 막지 않으셨다고 해서 그것을 선하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셉의 형들은 악한 의도로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한 사건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서도 같은 일이 나타납니다. 유다의 배신,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 증언, 빌라도의 불의와 군인들의 폭력은 분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행한 가장 큰 악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는 가장 큰 선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악이 사실은 선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악은 끝까지 악이며 행한 사람은 책임을 집니다. 다만 인간의 악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최종적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저자가 아니라, 악을 심판하시면서도 그것을 넘어 구원을 이루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왜 타락할 인간을 창조하셨나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이 필요했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실제 고통을 겪는 사람 앞에서 그런 설명은 상처를 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해 한 가지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셨음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조 이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인간의 죄가 역사에 들어오자 친히 그 결과를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멀리서 관찰하며 인간에게 책임만 묻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악과 고난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배신당하고, 모욕받고, 부당한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악에 희생된 인간과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은 에덴으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보다 큽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타락 이전 상태를 그대로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첫 아담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첫 창조 안에서 인간은 생명나무로부터 쫓겨났지만, 새 창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누립니다.

구원받은 인간은 단순히 죄를 짓기 전의 순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다시는 죽음이 지배하지 않는 생명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정도를 넘어, 악과 죽음이 다시는 침입할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십니다. 성경의 마지막은 뱀이 승리하거나 인간의 실패가 계속되는 장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과 애통과 아픔이 사라지는 장면입니다.

악의 존재는 하나님이 무능하시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지금의 세계만 바라보면 악이 너무 강해 보입니다. 전쟁과 폭력, 질병과 죽음, 배신과 불의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왜 즉시 모든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이 영원히 허용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구원의 시간이지만, 마지막에는 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연은 무능력이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오래 참으심입니다. 그러나 그 오래 참으심이 심판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숨겨진 악은 드러날 것이며, 억울한 자의 눈물은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의 이유를 모두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악을 짊어지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에 믿습니다.

완전한 창조는 결국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선했습니다. 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나 선한 질서를 왜곡할 때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명령하거나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악을 허용하시는 동안에도 그것을 통제하시고, 심판하시며,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왜 각각의 악이 허용되었는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어떤 고통 앞에서는 설명보다 침묵과 눈물과 동행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이 마지막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인간의 타락을 기록하지만, 성경의 마지막은 타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임재로 끝납니다.

완전한 창조에 악이 들어왔지만, 악이 하나님의 창조를 영원히 파괴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대답은 악의 모든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하나의 공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악은 실제이지만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은 상처받았지만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은 인간의 반역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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