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죄를 짓는데 왜 제사가 필요합니까?
또 죄를 짓는데 왜 제사가 필요합니까?
구약의 백성은 제사를 드린 뒤에도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속죄제를 드리고 용서받았지만, 며칠 뒤 또 탐욕을 품고 거짓말하며 이웃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옷이라면 왜 씻어야 하며, 다시 죄를 지을 사람이라면 왜 제사를 드려야 했을까요.
이 질문은 제사의 한계뿐 아니라 죄인의 삶에서 용서가 왜 반복해서 필요한지를 묻습니다. 성경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제사는 인간을 다시는 죄짓지 않는 존재로 즉시 바꾸는 장치가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주어진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제사는 죄 없는 사람을 만드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인이 한 번 제사를 드리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만드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제사의 목적은 인간의 죄성을 단번에 제거하는 데 있지 않고, 실제로 범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인간은 단지 가끔 실수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이 죄로 기울어진 존재입니다. 한 번 용서받았다고 해서 욕망과 교만, 두려움과 자기중심성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몸을 씻었다고 다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아니며, 밥을 먹었다고 다시는 배고프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몸에는 반복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제사는 하나님의 용서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가 반복되기 때문에 필요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었습니다
죄는 단순히 법조문을 어긴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더럽히며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제사는 그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언약적 통로였습니다. 죄인은 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피 흘림을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용서의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제사는 처벌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행위였습니다.
죄를 지은 뒤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명의 근원에서 멀어졌음을 인정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제단은 정죄의 장소이면서 귀환의 장소였습니다
제단에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피가 흘렀고 불이 타올랐으며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제단에는 동시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죄인이 직접 죽지 않고 대속의 제물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단은 죄인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에게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제사는 반복되는 실패의 증거이면서, 반복해서 열리는 은혜의 문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제사는 죄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해마다 드리는 제사로 말미암아 죄를 기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히 10:3).
이 말씀은 제사가 죄를 잊게 하는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이었다는 뜻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사람은 다시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죄의 삯은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죄를 쉽게 잊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도 자신이 준 상처는 빨리 잊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크게 보면서도 자신의 죄는 환경과 성격 탓으로 돌립니다.
제사는 죄인의 기억을 깨우는 종소리였습니다. 제물의 피를 볼 때마다 인간은 자신의 죄가 생명을 요구하는 무거운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죄를 기억하게 하는 목적은 죄책감 속에 영원히 가두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는 죄를 반복해도 괜찮다는 면허가 아니었습니다
제사가 있으니 마음대로 죄를 짓고 다시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회개 없는 제사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수많은 제물을 바쳤지만, 동시에 약자를 억압하고 불의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사 1:11-17).
제물의 수가 많다고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고백했습니다(시 51:17). 이것은 제사를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의 회개 없이 드리는 제사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죄를 반복하도록 허락하는 장치가 아니라, 반복되는 죄에서 돌이키도록 부르는 은혜의 훈련이었습니다.
용서는 죄를 가볍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용서하신다는 사실은 죄를 다시 지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받은 사람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값싼 용서는 죄를 방치하지만, 성경의 용서는 죄인을 변화로 부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받아들이시지만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물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은혜는 죄를 덮는 담요만이 아닙니다. 죄에서 일으켜 세우는 손입니다.
반복되는 제사는 인간의 무능을 드러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제사를 드렸어도 내일 또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제사장은 매일 서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반복은 제사의 불완전함을 나타냈습니다.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면 반복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율법의 제사들이 해마다 계속 드려졌지만, 예배하는 자들을 완전하게 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히 10:1). 반복되는 제사는 죄를 해결하는 최종 답이 아니라, 최종적인 제사를 기다리게 하는 표지였습니다.
마치 임시 다리가 강을 건너게 해 주지만 영구적인 다리는 아닌 것처럼,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면서도 더 완전한 길이 필요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반복되는 제사는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수많은 양과 염소가 죽었지만 인간의 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의 손은 매일 피로 물들었지만 인간의 마음은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반복은 한 가지 질문을 낳았습니다.
완전한 제물은 언제 오는가.
다시는 반복할 필요 없는 제사는 언제 드려지는가.
인간의 겉만이 아니라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분은 누구인가.
그 대답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드려지는 제물 중 하나가 아니십니다.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신 참된 대제사장이며 완전한 희생제물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그러므로 그분의 제사는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매번 다시 피를 흘렸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왜 계속 죄를 고백합니까?
예수님께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면, 신자는 다시 죄를 지을 때 왜 회개하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죄 고백은 십자가를 다시 반복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사가 불완전하여 새로운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습관과 연약함을 품고 살아갑니다. 칭의는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평생 계속됩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다시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녀가 잘못했다고 해서 매번 가족관계 자체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와의 친밀한 교제가 상처를 입습니다. 고백은 자녀의 신분을 새로 얻는 행위가 아니라, 깨어진 교제를 회복하는 행위입니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요일 1:9).
반복되는 회개는 위선이 아니라 싸움일 수 있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는 자신을 보며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회개한 것이 아닌가.
또 넘어졌으니 이전의 회개는 거짓이었는가.
물론 죄를 버릴 뜻 없이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나 동일한 죄와 오래 싸우면서도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위선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선자는 죄를 숨기고 사랑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에 넘어지지만 그것을 미워하며 다시 일어납니다.
성화의 길은 항상 곧게 뻗은 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일어서며, 후퇴하는 듯하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집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 돌아오는 것입니다.
제사는 죄인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인내가 크다는 증거였습니다
반복되는 제사를 보면 인간의 죄가 얼마나 끈질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용서의 길을 열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첫 실패만 견디시는 분이 아닙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백성을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는 자를 다시 받아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제단의 불이 반복해서 타올랐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반복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가 반복해서 죄인을 불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제사는 한 번의 십자가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백성이 다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 제사는 죄인을 언약 공동체 안에서 회복시키고, 죄의 심각성을 가르치며, 완전한 속죄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제사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인간에게는 매번 다른 제물이 아니라, 모든 죄를 담당할 완전한 한 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한 번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의 뿌리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새로운 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는 한 분의 피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덮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죄를 지었다고 해서 새로운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드려진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죄인은 넘어질 때마다 새 제물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번에 드려지신 어린양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제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인간이 쉽게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제사는 인간의 실패를 말했습니다.
단번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은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새롭게 빚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