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별도 없고, 천사도 없으며, 공간도 시간도 없던 때에 하나님은 홀로 무엇을 하셨을까.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무료함을 견디고 계셨을까. 세상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침묵 속에 머물러 계셨을까.
그러나 이 질문에는 인간의 시간 감각이 숨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전’과 ‘이후’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이 지나야 저녁이 오고, 어제가 있어야 오늘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도 창조 전의 어느 긴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만들기로 결정하셨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시간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
창조 이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한다(창 1:1). 여기서 태초는 이미 존재하던 시간의 한 지점을 가리키기보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 세계가 시작된 근원을 뜻한다.
그러므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얼마나 오래 계셨는가”라고 묻는 것은 북극보다 더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 자체가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면, 창조 이전이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 오래전이라는 뜻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창조보다 앞선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리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시간 안에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하셨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은 긴 세월을 기다리다가 창조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다. 기다림과 변화와 순서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완전하게 계셨다.
하나님에게 영원은 끝없이 늘어난 시간이 아니다. 영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흘러가는 강 밖에서 그 강 전체를 바라보는 충만한 현재이다.
하나님은 홀로 외롭게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홀로 계셨다고 말할 때, 그 ‘홀로’를 인간의 고독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독자인 신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다(요 17:24).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셨고, 성자는 성부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성령은 그 사랑의 교제 안에서 영원히 계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야 사랑할 수 있었던 분이 아니다. 사랑은 창조 이후에 처음 생긴 하나님의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영원한 사랑의 교제이시다.
창조는 외로움의 치료가 아니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안에는 채워야 할 빈자리가 없었다. 인간의 찬양이 없어도 하나님은 영광스러우셨고, 피조물의 사랑이 없어도 삼위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했다.
창조는 하나님의 결핍에서 나온 비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함에서 흘러나온 노래이다. 텅 빈 그릇이 채움을 구하듯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가득 찬 샘이 넘쳐흐르듯 존재와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필요해서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필요 이상의 사랑으로 부름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과 영광 가운데 계셨다
창조 이전의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지 상태에 계셨던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에게 인간과 같은 시간적 활동의 순서를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앎과 사랑, 기쁨과 영광의 교제가 있었다.
성부는 성자를 아셨고, 성자는 성부를 사랑하셨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영이셨다. 하나님 안에는 침묵보다 깊은 말씀이 있었고, 고독보다 충만한 교제가 있었으며, 피조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보다 먼저 존재하는 영광이 있었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고 증언한다(요 1:1). 세상이 있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 소리의 진동으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영원하신 성자께서 계셨다.
창조 이전의 하나님은 침묵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님 안에는 이미 영원한 말씀과 사랑의 응답이 있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구원의 뜻을 품으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고 말한다(엡 1:4).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증언한다(딤후 1:9).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 인간의 타락을 보고 당황하여 구원의 계획을 급히 세우셨다는 뜻이 아니다. 창조와 타락과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 밖에서 우연히 이어진 사건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아셨고, 그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뜻하셨다. 창세 전부터 어린양의 길이 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벧전 1:19-20).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다만 인간의 반역조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었으며, 하나님은 악보다 더 깊은 은혜를 이미 품고 계셨다는 뜻이다.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에는 인간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다.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하나로 통일된다(골 1:16, 엡 1:10).
그러므로 창조는 아무 목적 없이 시작된 우주적 실험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향해 흐르는 이야기였다. 빛이 창조될 때에도 그 빛의 궁극적인 의미는 세상의 빛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향했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질 때에도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가 그 원형으로 계셨다.
하나님은 왜 어느 순간 창조하셨는가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완전하셨다면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왜 창조하지 않은 채 계시지 않고, 존재와 역사를 시작하셨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이유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과 기쁨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엇에 강요받아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창조는 필연도 아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피조물에게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셨다. 존재하지 않던 것에게 존재를 주고, 생명 없는 것에 숨을 불어넣으며,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불러 관계 안에 세우셨다.
예술가는 캔버스가 없으면 불완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이 형상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 예술보다 훨씬 깊다.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시면서도, 자신의 선하심을 유한한 존재들이 받아 누리도록 자유롭게 생명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다른 분이 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이 더 완전해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에도 하나님이셨고, 창조 후에도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하나님에게 무엇을 보태지 못한다. 인간의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증가시키지 않으며, 인간의 죄도 하나님의 본질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관계하시지만 피조물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를 하찮게 만드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순전한 은혜로 존재하는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해서 사랑하신다면, 우리의 가치가 사라질 때 사랑도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랑하신다.
필요에 의한 사랑은 상대가 쓸모를 잃으면 식을 수 있다. 그러나 충만함에서 나오는 사랑은 상대의 부족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창조 이전의 신비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인간의 언어로 가장 조심스럽게 대답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으로 계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완전한 사랑과 기쁨, 영광과 교제 가운데 계셨다. 그리고 그 영원한 지혜 안에서 창조와 구원과 새 창조의 뜻을 품고 계셨다.
하나님에게는 무료한 공백도, 외로운 기다림도 없었다. 하나님은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충만하셨고,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사랑이셨다.
이 사실은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불려 나온 도구가 아니다. 영원히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게 하신 피조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셨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뜻을 품으셨다. 우리의 생애가 시작되기 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늦지 않았으며, 우리의 실패가 나타나기 전에도 구원의 길은 준비되어 있었다.
창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세상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계셨다.
시간은 없었지만 영원은 있었다.
인간은 없었지만 사랑은 있었다.
십자가는 역사 속에 아직 세워지지 않았지만, 구원의 뜻은 이미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사랑이 어느 날 시간을 열고, 빛을 부르며, 우리를 존재로 초대했다.
창조는 하나님의 외로움이 끝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피조 세계를 향해 문을 연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