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해와 상담
Understanding People
성경은 인간이 자기를 믿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스도인이 확신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데 따르는 필수요건으로 계시를 받아들인다면 먼저 계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계라는 말 속에는 계시자가 존재함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사고하시며 선택하시며 느끼시는 진정한 인격이라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피조물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계시에는 자연이라 책과 성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 계시만으로는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계시가 없는 직관, 이성, 경험은 그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칼뱅은 자연계시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성경이라는 안경을 써야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상담가들은 성경이 절대 권위의 책이 아니라 단지 도움을 주는 책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외에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느냐에 따라 방법은 달라집니다. 사람들을 직접 관찰하여 그 결과로 나온 결과로 나온 개념들을 모은 것을 ‘심리학’이라고 하며, 성경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정리해 놓은 것을 ‘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둘은 서로 보완적인 것입니다. 성경을 더욱 많이 연구해야 한다는 권면에 어떤 이들은 성경이 상담학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위험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절대적 권위의 성경을 제치고 다른 책들 즉 심리학을 근거로 한 상담학서적들 만을 연구하게 되면,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상담가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경적 연구 결론과 심리학적 연구 결론이 다르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로 잠언 22:15의 어린아이에게 매질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은 어떤 폭력도 부인하며, 폭력은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성향만을 증가시킨다고 하고, 성경 해석자들은 어느 정도의 체벌이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책 두 권의 견해’의 이론가들은 양측의 결론들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심리학적 연구든 신학적 연구든 거기에는 인간의 유한하고 타락된 마음이 작용하게 됩니다. 신학과 심리학 사이의 불일치가 일어나면 우리는 양쪽의 결론 체계를 다 재평가해 보아야 한다. 계시를 이런 식으로밖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불확실성만 남는다. 결국 이러한 일은 개인적인 판단밖에 남지 않는다. 사실은 불가피한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로 되돌아가게 된다.
두 번째 잘못된 요소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인 진리, 신학적인 진리 그리고 심리학자가 발견한 진리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권위를 갖는 것은 오류에 대해서이지 다른 진리에 대해서가 아니다. 진리의 권위는 그것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진실성 있느냐에 있다. 상담가는 결국 사라이나 인생의 목적 또는 죄와 같은 지본적인 관심사들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계시해 주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문제들의 해답을 성경 속에서 찾으라고 기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은 타락된 지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이해들은 신학과 심리학의 충돌로 인하여 이성주의로 돌아가게 합니다. 즉 성경의 최종 권위를 잃어버립니다. 또한 두 학문의 충돌로 인하여 결과에 집착하는 실용주의로 돌아가게 됩니다.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책 두 권의 견해인 인간 해석에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로 향하게 합니다.
이성주의와 실용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성경 연구의 결과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을 계시해 주시는 목적과 자연을 통해 계시해 주시는 목적은 서로 다릅니다. 즉 자연계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핑계치 못하고 창조주 앞에 무릎꿇게 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전능하시며, 광대하시고, 탁월한 지혜를 소유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일을, 중요한 일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는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인간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려 주시고, 그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생명Life을 얻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상담의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진정한 삶을 유린당하고 있는 이들이 문제를 극복하고 본래 창조주께서 주려 하셨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성경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의존하는 것은 성경이 가지는 명료성 때문입니다. 부분 부분 어려운 곳이 있기는 하지만 참 삶을 발견하는 데는 어렵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성경의 순결성 때문입니다. 성경이 가지는 순결성은 저주받아 신음하는 결함투성이의 자연과는 다릅니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혼전 성관계를 갖는 것이 결혼 이후 정서적 만족도가 훨씬 높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삶을 본래 의도와 다르게 왜곡하는 죄의 영향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통하여 얻는 결론들을 성경의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자연의 예들을 그대로 따르려 든다면, 우리는 약자를 잡아먹고, 겨울 내내 잠만 자고, 마음 내키는 대로 교미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연구들을 통해 얻은 개념들보다 성경의 연구들을 통하여 얻는 계시적 지식들은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네 번째는 성령께서 우릴 돕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책에서 약속하지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담 모델을 개발하려 할 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가 그 어떤 자료보다 내 사고의 기준으로 서 있어야 한다. 심리학의 연구와 자료들은 촉매역할을 하므로 연구가 정당하며 좋은 자극이다. 또한 상담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직관이나 이성의 힘을 버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사용할 때는 항상 성경의 권위가 기본 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담 개념의 근거로서 계시를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과, 성경의 계시가 상담에 대한 우리 모든 사고의 최종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모든 것을 세세히 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의 포괄적 충족성이라고 부른다. 관건은 그 성경 안에서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다. 이제 이 문제는 3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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