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십자가 신학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이 말은 루터의 신학을 대변하는 것이다. 루터는 창조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가려는 이성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하나님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발견되어 질수 있다고 선언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다. 십자가가 루터 신학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만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된 피조물을 통하여 계시하신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인간은 피조세계를 이성의 힘으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게 되어 창조세계는 더 이상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지 못한다. 오직 인간의 실존 세계에 오셔서 직접 인간이 되셔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이것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다. 루터가 왜 십자가 신학을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그의 생애를 통하여 간략하고 살펴보고, 소위 ‘탑속의 경험’과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중심적으로 그 안에 담겨진 루터의 십자가 신학사상을 살펴보자.
Ⅰ. 루터의 생애
1. 루터의 출생과 어린 시절
15세기 말 만스펠트의 공작령인 아이스레벤에서 루터는 출생했다. 정확히 1483년 11월 10이었다. 루터의 할아버지 즉 루더(Luder) 가정은 아이스레벤 근처에 있는 뫼라(Moehra) 출신의 농부였다. 루터의 부친인 한스(Hans)는 루더의 네 아들 가운데 장남이었고, 그러나 막내가 부친의 농가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1483년 가을 아이제나흐의 린데만 출신인 부인 가마레트와 함께 만스펠트의 공작령안에 있는 아이스레벤으로 이사갔다. 아이스레벤은 새로운 구리광이 발굴되어 많은 일꾼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쉽게 광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해 11월 10일 자정 무렵에 그의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마틴(Martin)이란 세례명을 주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스는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한 채 다음해인 1484년 만스펠트로 이사한다. 이곳에서 한스는 갱부로 일하다고 다른 사람과 합작으로 어떤 제련소를 임대해 곧 유명하게 되었으며, 어느 정도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
루터는 1488년에 시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읽기, 쓰기, 노래하기, 그리고 라틴어를 배웠다. 가정교육은 엄한 편이었고, 억압적이지는 않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 였다. 1497년 루터는 아그데부르크의 성당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성당학교 ‘공동생활형제단’이 함께 살았다. 그러나 2년 후 루터는 이곳을 떠나 아이제나흐의 성 게오르크 신부학교로 갔다.
2. 에크푸르트 대학과 수도사 서원
1501년 4월 말 루터는 에어푸르트 대학에 들어가 전문적인 공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의무과목인 자유예과의 7과목 즉 문법, 수사, 변증의 세과목, 수학, 음악, 지리, 그리고 천문의 네 과목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더 높은 단계인 신학, 의학 또는 법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루터는 인문학부의 과목들을 속히 수학하고 1505년 1월 7일 인문학 학사 시험에 합격했다.
에어푸르트 대학은 윌리엄 옥캄의 인식론적 원리를 추종하는 ‘새 길’(via moderna)의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새길’(via moderna)의 경향은 실재는 개별적인 것이거나 혹은 경험되는 것이며, 실재의 틀을 묘사하려고 시도하는 보편 개념들은 정신내적인 실재, 즉 우리 사고 속에만 존재하는 실재이다.(universalia sunt post res) 루터는 나중에 이곳의 스승의 한 사람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에게서 나는 모든 성경에서 신앙만이 가장 중요하며, 다른 모든 것은 이성의 판단이라는 것을 배웠다”1)
“1505년 7월 후덥지근한 어느 날, 한 여행자가 작센 지방의 소토테른하임 마을 근방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온 사방이 후끈거렵다. 그는 작지만 야무진 체구에 대학생복 차림을 한 청년이었다. 그가 마을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붓더니 뇌성병력과 함께 폭우로 변했다. 시커먼 하늘을 가르는 번개 때문에 그는 그만 땅에 나뒹굴고 말았다. 인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입술에서 “성 안나여, 살려 주소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하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2) 이 서원에 따라 루터는 1505년 7월 17일 에어푸르트의 어거스틴 엄수파(Augustiner-Eremiten)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친은 몹시 화를 냈다. 왜냐하면 루터야 말로 노년에 자신이 덕을 보려고 어렵게 가르쳐 놓은 자식이었기 때문이다”3).. 그 때 루터의 나이는 21살이었다.
3. 어거스틴 수도원
1년 정도의 견습생활을 마친 1596년 9월 서원식을 했고, 정식 수도사가 되었다. 수도원의 삶은 철저한 금욕생활과 어거스틴 중심의 교부신학을 공부했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루터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수련 수사 기간 동안 그는 영혼에 평화를 가득히 채우도록 만들어진 종교 의식에 전념했다. 기도드리는 시간이 하루 일곱 번씩이나 되었다. 열덟시간을 자고 수도사들은 다음 날 새벽 한 두시에 수도원 종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첫 번째 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십자가 성호를 긋고 흰 옷과 어깨에 걸치는 옷을 입었다. 이 복장을 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기 방을 나설 수 없었다. 두 번째 종이 울리면 각자가 조용조용히 예배당으로 가서 성수를 자신에게 뿌리고 주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이 세상의 구주께 헌신의 기도를 올렸다. 이어서 모두들 성가대석에 앉았다. 이 첫째 일과는 45분간 진행되었다. 이러한 7회의 일과는 선창자를 따라 부르는 “살베 레기나”(Salve Regina)로 끝났다. 곧 “구원하소서, 오 여왕님이시여, 그대의 자비의 어머니, 우리의 생명, 우리의 기쁨, 우리의 소망이시여, 그대에게 하와의 유랑 자손인 저희들이 부르짖나이다. 그대에게 이 눈물 골짜기에서 시들어 가는 저희들이 하소연 하나이다.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소서, 고마우신 동정녀 마리아시여, 저희를 위해 기도하소서, 그대 하나님의 거룩한 어머니시여”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아베 마리아”와 “주기도문”을 노래한 다음 수도사들은 둘씩 짝을 지어 조용히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하루의 일과는 이러한 의식으로 꽉 차있었다. 수도사 마르틴은, 자신이 성인들이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수도원장 발 앞에서 엎드려서 그는 서약을 했으며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황공스럽게도 우리의 유한한 몸을 입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고 비나이다. 거룩한 조상들이 순결과 자아 부정의 표로서 택한 이 복장에 축복하소서. 주의 중, 마르틴 루터가 이 옷을 입나이다. 그에게 주의 불멸을 덧입혀 주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더불어 사시며 통치하시는 분, 영원을 가로 지르는 하나님이시여, 아멘” 이렇게 해서 엄숙한 서약이 끝났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의 수사였다. 태어나자마자 갓 세례를 받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결한 수사였다. 루터는 교회가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제시한 삶을 자신 만만하게 걸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기도, 노래, 묵상, 조용한 동무들, 규율, 검소한 생활 속에서 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4)
수도사의 서원을 마친 후 루터는 사제가 될 준비를 위해 튀빙겐의 신학교수인 가브리엘 빌(Gabriel Biel)의 미사정경의 주해를 공부하라는 명을 받았다. 1507년 4월 4일 루터는 에어푸르트 성당의 사제가 되었고, 1507년 5월 2일 주일 칸타타에서 동료, 친구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임신부로서 첫 미사를 축하했다. 신부가 된 후 루터는 신학공부를 시작한다. 책임자는 오한 나딘이란 신부였다. 그는 튀빙겐의 유명론자인 가브리엘 빌의 학생이자 추종자였다. 나딘은 서방에서 조식신학 수업의 기본 텍스트로 사용했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교의학에 대해 강의했다. 루터는 이 수업 외에도 주해강의를 들었고, 가브리엘 빌과 피어르 다이 그리고 오캄의 교의학 주해를 공부했다. 1508년 가을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어거스틴 엄수파 수도원으로 갔다. 여기서 도덕철학(Moralphiosophie)을 볼프강 오스테르마이르 신부 대신 비텐베르크 인문학부에서 강의해야 했다. 동시에 그는 신학부에서 자신의 공부를 계속했다. 1509년 3월 비텐베르크에서 성서학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10월 루터는 에어푸르트로 돌아왔고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교의학을 읽으며 공부했다. 더불어 어거스틴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신의 도성과 삼위일체론을 깊이 공부했다. 다음해인 1510년 11월 루터는 수도원의 일로 로마로 파송되었다. 로마에서 약 4주간을 머물며 로마에 있는 일곱 개의 주요 교회들을 일일이 돌면서 거기서 제공하는 은총의 수단을 얻고자 했다. 스타우피츠는 루터를 1511년 비텐베르크로 불러 박사과정으로 신학수업을 마칠 것을 종용(慫慂)했다. 동시에 비텐베르크 수도원의 담당 설교자로 임명했다. 1512년 10월 19일 박사과정 최종 시험인 토론을 마치고 학위를 수여받았고, 며칠 뒤인 22일 신학부교수가 되었다. 스타우피츠는 수도원 업무의 과중함으로 인해 루터에게 성서 교수직(lectura in biblia)을 맡겼다. 성서 교수직은 루터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후에 일어날 스콜라 신학의 배격과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 일이 바로 성경을 집중적으로 주해해 나가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4. 교수로서의 루터 - 복음의 체험(탑 속의 경험)
1512년 10월 루터는 베텐베르크 수도원 강의실에서 첫 강의 시작했다. 마마도 창세기를 읽읽은 것으로 보인다. 1513년 8월 1일 그는 시편 강의를 시작했다. 이것은 1515년까지 계속 되었다. 1515년 가을에는 바울의 로마서 강의를 시작했다. 1516년과 1517년에 걸쳐서는 갈라디아서를 강의했다. “이 연구가 루터에게 다메섹으로 가는 길인 셈이었다”5) 소위 ‘탑속의 경험’(Turmerlebnis: tower experience)6)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귀향길에 일어난 번개로 인한 놀라움이나 첫미사를 집전하면서 느낀 것과 로마에서 얻은 환희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루터의 전생을 전복시키고, 신앙의 전제에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다. 이 부분은 루터가 십자가 신학을 정립한 시기 이므로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 루터의 십자가 신학(Thologia crucis)
1. 하나님의 ‘의’(institia Dei)
(1) 루터의 영적 갈등
루터가 수도원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었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루터에게 결코 평안을 주지 못했는데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에 비하여 자신의 의는 너무나 형편없기 때문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을 들으면 공포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 곤했다. 초기 수도원에서 루터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자신에게 수여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루터는 양심이 자신을 정죄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산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만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자신에게 올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루터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 할수록 자신이 티끌, 잿가루, 벌레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들을 루터를 전율케 했고 영적인 고통은 더해만 갔다. 루터는 이것을 ‘안페히통’(Anfechtu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의심, 공포, 절망, 자포자기, 버림받음, 허무의 자기표현이다. 루터는 하늘 보좌에서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고,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하나님의 만족을 얻기 위하여 끝임없이 분투했다.
(2)복음의 의를 향하여
루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수도원장을 있었던 슈타우피츠(Staupitz)였다. 슈타우피츠의 영향으로 타울러 같은 중세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접하게 된다. 루터거 볼 때 타울러의 의는 인간이 무가되고 하나님이 인간 안에서 전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얼마나 공의롭고 죄를 미워하시는가를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있으며,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점점 의심을 하게 되었다.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는 데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안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저주가 자신에게 선포되고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루터는 시편22편을 강의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버림당한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일치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가 겪고 있는 안페히통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겪었던 것이다. 루터는 시편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된다. 특별힌 롬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의’를 보게 된 것이다. 이로서 루터는 그동안 몸부림치며 찾았던 ‘자비로운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포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이 루터가 그동안 찾았던 하나님의 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의는 두렵거나 무서움의 인식이 아닌 자비롭고 사랑스러운 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시편과 로마서를 통하여 루터가 발견한 ‘믿음에 의한 의인’ 즉 ‘이신칭의’ 교리이다. 루터에게 깨달음과 경험의 시간은 종교개혁의 출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믿음에 의한 의인의 특징
(1) 낯선 의
루터에게 있어서 칭의의 깨달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낯선 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낯설다는 뜻은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낯선 의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자력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스콜라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신의 경건으로 의롭게 된다는 율법적 교만을 깨는 것이다. 루터가 믿음이라고 말할 때 그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며, 자신을 보지 않고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를 보는 믿음이다. 믿음을 인간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믿음은 “오히려 모든 자신의 행위와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파하는 것이며, 은총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에 대해 응답할 때 가능하다."7)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어떻게 의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가? 루터는 이 질문에 대하여 ‘전가’되었다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이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으로 보고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죄인은 스스로 이 전가를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을 수만 있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루터는 이것을 ‘능동적인 의’가 아닌 ‘수동적인 의’로 규정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받아진 ‘수동적인 의’로 우리는 옛성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날마다 의롭게 되어져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2) 믿음을 통한 즐거운 교환
루터가 초기에 만난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이요, 진노의 하나님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전적으로 죄인들 때문이다. 루터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무언가가 자신 안에는 도무지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공로와 수고는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의에 참예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이기도 하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그의 모든 풍성한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것이 된다. 이러한 신비로운 교환은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진 ‘복음의 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모든 것을 소유한다.
(3)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루터는 이렇게 답한다. 비록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게 됨을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인이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함으로 되어지는 것이다.(롬3:28)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었지만 죄의 본성을 제거되지 않았으며, 다만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덮어질 뿐이다.
그럼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죄의 힘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육체가 소명되기 전에는, 즉 영화로운 몸을 입기 전에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부패한 원죄의 성향을 다스려야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죄인이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의인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롭게 된 죄인들은 끊임없이 자신 안에 있는 죄인을 쳐서 복종시키여야 한다. “루터는 단순히 원죄를 인간에게 본래의 거룩성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것을 실질적인 타락의 형태이며, 완전한 인간 위에 남겨져 있는 흔적이라고 했다”8) 인간은 이러한 원죄의 영향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1) 하이델 베르크 논쟁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의 논제를 붙였다. 이날은 만성절 전야제였다. 루터는 면죄부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토론을 하기 원했던 것은 면죄부가 죄를 사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교황 율리우스2세는 로마에 베드로 성당을 신축하기위해 재정조달을 위한 면죄부 판매를 1506년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알브레히트 폰 마인쯔에게 이 면죄부 판매를 위임했다. 면죄부 판매의 절반은 푸거가문에게서 빌린 29000굴덴의 빚을 청산하는 데 사용했다. 루터는 이러한 면죄부의 판매를 용납할 수 없었다. 루터는 신자의 삶은 회개하며 사는 삶이며, 매일 매일 참회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논제1-4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의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 루터가 공격한 것은 교황이 연옥에 대한 권세를 쥐고 있으면서 죄나 처벌을 감면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했다. 논제 62번에서는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이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이것으로 루터는 당시 면죄부 논쟁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성자의 잉여 공로의 보화인 교회 공로론을 반대했다. 논제 92-95번에서는 면죄가 주는 거짓된 평화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참된 평화와 대립한다고 주장했다. 논제가 가져올 파장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루터는 1518년 2월에서 5월까지 ‘면죄부 효용성에 대한 논쟁해설’을 썻고 관활 담당자인 브란테부르크의 히에로니무스 슐체 감독에게 보냈다. 그는 답변을 회피했다. 루터는 95개조로 인해 도미니크 교단인 마인쯔에 의하여 로마 교황청에 고소되었다.
로마는 소송을 열기보다 신학적인 토론을 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총책임자인 스타우피츠에게 루터를 잘 훈계하고 그에게 신학적 변명을 주도록 요구했다. 스타우피츠는 1518년 4월 26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루터에게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루터는 여기서 28개의 신학적 논제와 12개의 철학적 논제를 제시했다. 이 논제들은 면죄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면죄부 배후에 있는 문제를 다루게 된다.
(2)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1)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법은 무언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라고 증거 한다. 여기서 나타난 하나님은 먼저 절대타자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았고, 완전히 독립적이시며, 전적으로 모든 만물 위에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다. 둘째는 온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존재케 하시며 운행하신다. 창조의 개념에는 이렇게 초월과 내재가 동시에 함께 한다.
이러한 창조신학은 헬라철학과 만나면서 기독교 유신으로 변화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플루티누스의 유출설 등은 기독교 신론을 더욱 정교하게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중세 스콜라주의를 주도하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우주론적 기독교 신론으로 만들어 진다. 그의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은 사변적인 철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성을 논증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방법은 자연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아퀴나스는 창조세계를 관찰하고 피조물의 질서체계와 본성을 유추해나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로까지 인식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아퀴나스의 이러한 방법은 아리시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창조신학에 의하면 모든 존재들은 목적이 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도 질서 정연한 세상에서 어떤 목적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진리들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성을 신앙에 중요한 서언(preamble)본다. 이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포함하여 어떤 신학적인 진리들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유한한 피조물들의 영향은 받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이시다. 하나은 자연계의 설계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연계에 계속하여 운행하시고 자연계를 지배하고 유지하시는 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성은 현상 세계를 통하여 모든 존재를 있게 하신 절대타자인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은 ‘영광의 신학’으로 명명하고 ‘십자가 신학’으로 비판했다.
2)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자신의 십자가 신학을 전개한다. 그의 주요 전제는 이성에 바탕을 둔 스콜라주의의 ‘영광의 신학’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신학자로 불리울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논제 19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 만드신 것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람(롬1:20)은 신학자로 불리울 자격이 없다.
논제 20
그러나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보이는 것들을 인식하는 사람은 신학자로 불릴 자격이 있다.
논제 21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이라고 부르고 선을 악이라고 부른다. ‘십자가 신학자’는사실 그대로 말한다.
논제 22
행위도 속에서 인식되는 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러한 지혜는 인간을 극히 교만하게 하고 맹목적이며 완고하게 한다.
논제 24
하지만 그러한 지혜는 그 자체가 악이 아니며 율법도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이 없이는 인간은 가장 선학 것들을 가장 사악한 방법으로 오용한다.
루터는 위의 논제들을 통하여 스콜라 신학의 핵심적인 근거를 반박하면서 자연신학의 오류들을 드러내기를 원했다.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은 이성을 통하여 알려질 수 없다는 것과 둘째로는 오직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 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루터는 자연신학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인식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요한복음 14:8,9절을 주해하면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라는 말은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배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콜라철학의 오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계시를 통해 특별계시를 설명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역사나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피상적인 지식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는 없다. 고린도 전서 1:21을 연결하면서 루터는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덮붙인다. 왜냐하면 자연과 역사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가면 뒤에 숨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인 지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혹은 자연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모든 족속을 나름대로의 신을 갖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간들 위에 신적인 존재가 있음을 알고 있으나 그 신적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9) 스콜라 철학의 하나님은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 고안된 하나님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이러한 영광의 신학을 비판함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감추시고 드러내신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드러내신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으로 인해 더럽혀져있고 왜곡되어 있어서 인간은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습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비천함, 고통, 실패,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알려지시기를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종의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감추어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볼수 있는 것은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감춤으로 우리에게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십자가의 죽음과 약함 속에 그의 계시를 숨기시는 하나님을 볼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벗어난 곳에서 얻는 그 어떤 지식도 우상의 뿌리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그 계시를 파악하려는 이성의 모든 시도들을 거부하는 감추어진 계시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인간의 가장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이성은 이러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 없다. 영광의 신학은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을 향해 상승하려 한다. 그러나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비하하셔서 인간이 되셨다.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단지 나약한 인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하고 할 때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을 고통과 비참함과 버려짐을 말한다. 우리는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치욕스런 패배, 고난, 비참함, 약함, 죽음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겸손 안에서만 인식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 감추어 계신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루터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이 당했던 고통(Anfechtung)을 보았다. 안페히통은 희망이 없는 절망을 뜻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신다. 하나님은 왜 인간들에게 시련과 영적인 고통을 주시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자만함을 파괴시키고 전적인 절망과 겸손의 상태로 떨어뜨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을 비하시키시는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지옥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그리고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이다. 인간이 낮아지고 그래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수 없다는 것은 인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이다.”10)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거나, 내적인 자원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애물들이며, 방해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시련과 고통들을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한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공로와 공적을 무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들과 좋은 것들을 나누신다. 풍성한 교제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Ⅲ 결론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하는 것보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 보다 잘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믿음을 잘 붙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귀중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왜 우리는 담대하게 고난을 받을 수 없습니까?”11)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신자의 삶이다. 루터는 잃어버린 십자가신학을 다시 찾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인 고통과 순례의 길을 지나면서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로 발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공로는 힘을 잃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십자가 신학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터의 고백처럼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고 말해야 한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십자가 없는 고통과 금욕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말씀이 없는 신비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는 시도는 마땅히 배척당해야 마땅하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교회의 건출물들,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신앙이 팽배한 이곳에서 루터가 발견한 십자가의 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직접 인간이 되셔서 고통을 당하시고, 죄인들과 창기들의 친구가 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모두 잃어버린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번역서
롤란드 베인톤 [마르틴 루터의 생애] 생명의 말씀사
베른하르트 로제 [마틴루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벵트 헤그룬트 [신학사] 성광문화사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Ⅱ] 대한예수교출판국
알리스터 맥그레스 [루터의 십자가 신학] 컨콘디아사
국내 논문
박용우, 루터에게 있어서 계시신학의 이해
김주한, 마틴 루터의 생애연구
마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연구
연구홍, 루터와 Institia Dei
1) 1518년 5월 9일자 투르트페터에게 보낸 편지이다.
Ex te primo omniun didici, solis cannicis libris debrei fidem, ceteris omnibus iudicium - rationis)
2) 롤란드 베인톤, 마틴루터의 생애, 생명의 말씀사
3) 베인톤, 앞의 책, p41
4) 롤란드 베인톤, 마르틴 루터의 생애 p45-46
5) 롤란드 베인통. 위의 책 p75
6) 루터의 서재가 수도원의 탑 속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7) 베른흐르트 로제, 마틴루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p364
8) 벵트 헤그룬트, 신학사, 1991, 성광문화사, p318
9)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Ⅱ. 대한예수교 총회 출판국, p61
10) 알리스터 맥그래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 컨콜디아사, p166
11) 1530년 4월 16일 부활전 전 토요일 설교 중에서.. 루터전집 10권 p224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이 말은 루터의 신학을 대변하는 것이다. 루터는 창조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가려는 이성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하나님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발견되어 질수 있다고 선언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다. 십자가가 루터 신학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만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된 피조물을 통하여 계시하신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인간은 피조세계를 이성의 힘으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게 되어 창조세계는 더 이상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지 못한다. 오직 인간의 실존 세계에 오셔서 직접 인간이 되셔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이것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다. 루터가 왜 십자가 신학을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그의 생애를 통하여 간략하고 살펴보고, 소위 ‘탑속의 경험’과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중심적으로 그 안에 담겨진 루터의 십자가 신학사상을 살펴보자.
Ⅰ. 루터의 생애
1. 루터의 출생과 어린 시절
15세기 말 만스펠트의 공작령인 아이스레벤에서 루터는 출생했다. 정확히 1483년 11월 10이었다. 루터의 할아버지 즉 루더(Luder) 가정은 아이스레벤 근처에 있는 뫼라(Moehra) 출신의 농부였다. 루터의 부친인 한스(Hans)는 루더의 네 아들 가운데 장남이었고, 그러나 막내가 부친의 농가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1483년 가을 아이제나흐의 린데만 출신인 부인 가마레트와 함께 만스펠트의 공작령안에 있는 아이스레벤으로 이사갔다. 아이스레벤은 새로운 구리광이 발굴되어 많은 일꾼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쉽게 광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해 11월 10일 자정 무렵에 그의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마틴(Martin)이란 세례명을 주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스는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한 채 다음해인 1484년 만스펠트로 이사한다. 이곳에서 한스는 갱부로 일하다고 다른 사람과 합작으로 어떤 제련소를 임대해 곧 유명하게 되었으며, 어느 정도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
루터는 1488년에 시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읽기, 쓰기, 노래하기, 그리고 라틴어를 배웠다. 가정교육은 엄한 편이었고, 억압적이지는 않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 였다. 1497년 루터는 아그데부르크의 성당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성당학교 ‘공동생활형제단’이 함께 살았다. 그러나 2년 후 루터는 이곳을 떠나 아이제나흐의 성 게오르크 신부학교로 갔다.
2. 에크푸르트 대학과 수도사 서원
1501년 4월 말 루터는 에어푸르트 대학에 들어가 전문적인 공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의무과목인 자유예과의 7과목 즉 문법, 수사, 변증의 세과목, 수학, 음악, 지리, 그리고 천문의 네 과목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더 높은 단계인 신학, 의학 또는 법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루터는 인문학부의 과목들을 속히 수학하고 1505년 1월 7일 인문학 학사 시험에 합격했다.
에어푸르트 대학은 윌리엄 옥캄의 인식론적 원리를 추종하는 ‘새 길’(via moderna)의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새길’(via moderna)의 경향은 실재는 개별적인 것이거나 혹은 경험되는 것이며, 실재의 틀을 묘사하려고 시도하는 보편 개념들은 정신내적인 실재, 즉 우리 사고 속에만 존재하는 실재이다.(universalia sunt post res) 루터는 나중에 이곳의 스승의 한 사람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에게서 나는 모든 성경에서 신앙만이 가장 중요하며, 다른 모든 것은 이성의 판단이라는 것을 배웠다”1)
“1505년 7월 후덥지근한 어느 날, 한 여행자가 작센 지방의 소토테른하임 마을 근방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온 사방이 후끈거렵다. 그는 작지만 야무진 체구에 대학생복 차림을 한 청년이었다. 그가 마을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붓더니 뇌성병력과 함께 폭우로 변했다. 시커먼 하늘을 가르는 번개 때문에 그는 그만 땅에 나뒹굴고 말았다. 인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입술에서 “성 안나여, 살려 주소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하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2) 이 서원에 따라 루터는 1505년 7월 17일 에어푸르트의 어거스틴 엄수파(Augustiner-Eremiten)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친은 몹시 화를 냈다. 왜냐하면 루터야 말로 노년에 자신이 덕을 보려고 어렵게 가르쳐 놓은 자식이었기 때문이다”3).. 그 때 루터의 나이는 21살이었다.
3. 어거스틴 수도원
1년 정도의 견습생활을 마친 1596년 9월 서원식을 했고, 정식 수도사가 되었다. 수도원의 삶은 철저한 금욕생활과 어거스틴 중심의 교부신학을 공부했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루터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수련 수사 기간 동안 그는 영혼에 평화를 가득히 채우도록 만들어진 종교 의식에 전념했다. 기도드리는 시간이 하루 일곱 번씩이나 되었다. 열덟시간을 자고 수도사들은 다음 날 새벽 한 두시에 수도원 종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첫 번째 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십자가 성호를 긋고 흰 옷과 어깨에 걸치는 옷을 입었다. 이 복장을 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기 방을 나설 수 없었다. 두 번째 종이 울리면 각자가 조용조용히 예배당으로 가서 성수를 자신에게 뿌리고 주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이 세상의 구주께 헌신의 기도를 올렸다. 이어서 모두들 성가대석에 앉았다. 이 첫째 일과는 45분간 진행되었다. 이러한 7회의 일과는 선창자를 따라 부르는 “살베 레기나”(Salve Regina)로 끝났다. 곧 “구원하소서, 오 여왕님이시여, 그대의 자비의 어머니, 우리의 생명, 우리의 기쁨, 우리의 소망이시여, 그대에게 하와의 유랑 자손인 저희들이 부르짖나이다. 그대에게 이 눈물 골짜기에서 시들어 가는 저희들이 하소연 하나이다.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소서, 고마우신 동정녀 마리아시여, 저희를 위해 기도하소서, 그대 하나님의 거룩한 어머니시여”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아베 마리아”와 “주기도문”을 노래한 다음 수도사들은 둘씩 짝을 지어 조용히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하루의 일과는 이러한 의식으로 꽉 차있었다. 수도사 마르틴은, 자신이 성인들이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수도원장 발 앞에서 엎드려서 그는 서약을 했으며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황공스럽게도 우리의 유한한 몸을 입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고 비나이다. 거룩한 조상들이 순결과 자아 부정의 표로서 택한 이 복장에 축복하소서. 주의 중, 마르틴 루터가 이 옷을 입나이다. 그에게 주의 불멸을 덧입혀 주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더불어 사시며 통치하시는 분, 영원을 가로 지르는 하나님이시여, 아멘” 이렇게 해서 엄숙한 서약이 끝났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의 수사였다. 태어나자마자 갓 세례를 받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결한 수사였다. 루터는 교회가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제시한 삶을 자신 만만하게 걸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기도, 노래, 묵상, 조용한 동무들, 규율, 검소한 생활 속에서 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4)
수도사의 서원을 마친 후 루터는 사제가 될 준비를 위해 튀빙겐의 신학교수인 가브리엘 빌(Gabriel Biel)의 미사정경의 주해를 공부하라는 명을 받았다. 1507년 4월 4일 루터는 에어푸르트 성당의 사제가 되었고, 1507년 5월 2일 주일 칸타타에서 동료, 친구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임신부로서 첫 미사를 축하했다. 신부가 된 후 루터는 신학공부를 시작한다. 책임자는 오한 나딘이란 신부였다. 그는 튀빙겐의 유명론자인 가브리엘 빌의 학생이자 추종자였다. 나딘은 서방에서 조식신학 수업의 기본 텍스트로 사용했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교의학에 대해 강의했다. 루터는 이 수업 외에도 주해강의를 들었고, 가브리엘 빌과 피어르 다이 그리고 오캄의 교의학 주해를 공부했다. 1508년 가을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어거스틴 엄수파 수도원으로 갔다. 여기서 도덕철학(Moralphiosophie)을 볼프강 오스테르마이르 신부 대신 비텐베르크 인문학부에서 강의해야 했다. 동시에 그는 신학부에서 자신의 공부를 계속했다. 1509년 3월 비텐베르크에서 성서학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10월 루터는 에어푸르트로 돌아왔고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교의학을 읽으며 공부했다. 더불어 어거스틴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신의 도성과 삼위일체론을 깊이 공부했다. 다음해인 1510년 11월 루터는 수도원의 일로 로마로 파송되었다. 로마에서 약 4주간을 머물며 로마에 있는 일곱 개의 주요 교회들을 일일이 돌면서 거기서 제공하는 은총의 수단을 얻고자 했다. 스타우피츠는 루터를 1511년 비텐베르크로 불러 박사과정으로 신학수업을 마칠 것을 종용(慫慂)했다. 동시에 비텐베르크 수도원의 담당 설교자로 임명했다. 1512년 10월 19일 박사과정 최종 시험인 토론을 마치고 학위를 수여받았고, 며칠 뒤인 22일 신학부교수가 되었다. 스타우피츠는 수도원 업무의 과중함으로 인해 루터에게 성서 교수직(lectura in biblia)을 맡겼다. 성서 교수직은 루터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후에 일어날 스콜라 신학의 배격과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 일이 바로 성경을 집중적으로 주해해 나가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4. 교수로서의 루터 - 복음의 체험(탑 속의 경험)
1512년 10월 루터는 베텐베르크 수도원 강의실에서 첫 강의 시작했다. 마마도 창세기를 읽읽은 것으로 보인다. 1513년 8월 1일 그는 시편 강의를 시작했다. 이것은 1515년까지 계속 되었다. 1515년 가을에는 바울의 로마서 강의를 시작했다. 1516년과 1517년에 걸쳐서는 갈라디아서를 강의했다. “이 연구가 루터에게 다메섹으로 가는 길인 셈이었다”5) 소위 ‘탑속의 경험’(Turmerlebnis: tower experience)6)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귀향길에 일어난 번개로 인한 놀라움이나 첫미사를 집전하면서 느낀 것과 로마에서 얻은 환희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루터의 전생을 전복시키고, 신앙의 전제에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다. 이 부분은 루터가 십자가 신학을 정립한 시기 이므로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 루터의 십자가 신학(Thologia crucis)
1. 하나님의 ‘의’(institia Dei)
(1) 루터의 영적 갈등
루터가 수도원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었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루터에게 결코 평안을 주지 못했는데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에 비하여 자신의 의는 너무나 형편없기 때문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을 들으면 공포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 곤했다. 초기 수도원에서 루터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자신에게 수여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루터는 양심이 자신을 정죄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산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만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자신에게 올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루터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 할수록 자신이 티끌, 잿가루, 벌레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들을 루터를 전율케 했고 영적인 고통은 더해만 갔다. 루터는 이것을 ‘안페히통’(Anfechtu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의심, 공포, 절망, 자포자기, 버림받음, 허무의 자기표현이다. 루터는 하늘 보좌에서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고,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하나님의 만족을 얻기 위하여 끝임없이 분투했다.
(2)복음의 의를 향하여
루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수도원장을 있었던 슈타우피츠(Staupitz)였다. 슈타우피츠의 영향으로 타울러 같은 중세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접하게 된다. 루터거 볼 때 타울러의 의는 인간이 무가되고 하나님이 인간 안에서 전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얼마나 공의롭고 죄를 미워하시는가를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있으며,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점점 의심을 하게 되었다.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는 데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안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저주가 자신에게 선포되고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루터는 시편22편을 강의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버림당한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일치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가 겪고 있는 안페히통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겪었던 것이다. 루터는 시편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된다. 특별힌 롬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의’를 보게 된 것이다. 이로서 루터는 그동안 몸부림치며 찾았던 ‘자비로운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포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이 루터가 그동안 찾았던 하나님의 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의는 두렵거나 무서움의 인식이 아닌 자비롭고 사랑스러운 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시편과 로마서를 통하여 루터가 발견한 ‘믿음에 의한 의인’ 즉 ‘이신칭의’ 교리이다. 루터에게 깨달음과 경험의 시간은 종교개혁의 출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믿음에 의한 의인의 특징
(1) 낯선 의
루터에게 있어서 칭의의 깨달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낯선 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낯설다는 뜻은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낯선 의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자력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스콜라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신의 경건으로 의롭게 된다는 율법적 교만을 깨는 것이다. 루터가 믿음이라고 말할 때 그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며, 자신을 보지 않고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를 보는 믿음이다. 믿음을 인간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믿음은 “오히려 모든 자신의 행위와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파하는 것이며, 은총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에 대해 응답할 때 가능하다."7)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어떻게 의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한가? 루터는 이 질문에 대하여 ‘전가’되었다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이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으로 보고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죄인은 스스로 이 전가를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을 수만 있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루터는 이것을 ‘능동적인 의’가 아닌 ‘수동적인 의’로 규정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받아진 ‘수동적인 의’로 우리는 옛성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날마다 의롭게 되어져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2) 믿음을 통한 즐거운 교환
루터가 초기에 만난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이요, 진노의 하나님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전적으로 죄인들 때문이다. 루터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무언가가 자신 안에는 도무지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공로와 수고는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의에 참예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이기도 하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그의 모든 풍성한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것이 된다. 이러한 신비로운 교환은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진 ‘복음의 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모든 것을 소유한다.
(3)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루터는 이렇게 답한다. 비록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게 됨을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인이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함으로 되어지는 것이다.(롬3:28)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었지만 죄의 본성을 제거되지 않았으며, 다만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덮어질 뿐이다.
그럼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죄의 힘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육체가 소명되기 전에는, 즉 영화로운 몸을 입기 전에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부패한 원죄의 성향을 다스려야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죄인이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의인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롭게 된 죄인들은 끊임없이 자신 안에 있는 죄인을 쳐서 복종시키여야 한다. “루터는 단순히 원죄를 인간에게 본래의 거룩성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것을 실질적인 타락의 형태이며, 완전한 인간 위에 남겨져 있는 흔적이라고 했다”8) 인간은 이러한 원죄의 영향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1) 하이델 베르크 논쟁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의 논제를 붙였다. 이날은 만성절 전야제였다. 루터는 면죄부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토론을 하기 원했던 것은 면죄부가 죄를 사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교황 율리우스2세는 로마에 베드로 성당을 신축하기위해 재정조달을 위한 면죄부 판매를 1506년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알브레히트 폰 마인쯔에게 이 면죄부 판매를 위임했다. 면죄부 판매의 절반은 푸거가문에게서 빌린 29000굴덴의 빚을 청산하는 데 사용했다. 루터는 이러한 면죄부의 판매를 용납할 수 없었다. 루터는 신자의 삶은 회개하며 사는 삶이며, 매일 매일 참회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논제1-4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의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 루터가 공격한 것은 교황이 연옥에 대한 권세를 쥐고 있으면서 죄나 처벌을 감면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했다. 논제 62번에서는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이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이것으로 루터는 당시 면죄부 논쟁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성자의 잉여 공로의 보화인 교회 공로론을 반대했다. 논제 92-95번에서는 면죄가 주는 거짓된 평화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참된 평화와 대립한다고 주장했다. 논제가 가져올 파장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루터는 1518년 2월에서 5월까지 ‘면죄부 효용성에 대한 논쟁해설’을 썻고 관활 담당자인 브란테부르크의 히에로니무스 슐체 감독에게 보냈다. 그는 답변을 회피했다. 루터는 95개조로 인해 도미니크 교단인 마인쯔에 의하여 로마 교황청에 고소되었다.
로마는 소송을 열기보다 신학적인 토론을 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총책임자인 스타우피츠에게 루터를 잘 훈계하고 그에게 신학적 변명을 주도록 요구했다. 스타우피츠는 1518년 4월 26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루터에게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루터는 여기서 28개의 신학적 논제와 12개의 철학적 논제를 제시했다. 이 논제들은 면죄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면죄부 배후에 있는 문제를 다루게 된다.
(2)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1)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법은 무언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라고 증거 한다. 여기서 나타난 하나님은 먼저 절대타자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았고, 완전히 독립적이시며, 전적으로 모든 만물 위에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다. 둘째는 온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존재케 하시며 운행하신다. 창조의 개념에는 이렇게 초월과 내재가 동시에 함께 한다.
이러한 창조신학은 헬라철학과 만나면서 기독교 유신으로 변화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플루티누스의 유출설 등은 기독교 신론을 더욱 정교하게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중세 스콜라주의를 주도하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우주론적 기독교 신론으로 만들어 진다. 그의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은 사변적인 철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성을 논증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방법은 자연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아퀴나스는 창조세계를 관찰하고 피조물의 질서체계와 본성을 유추해나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로까지 인식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아퀴나스의 이러한 방법은 아리시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창조신학에 의하면 모든 존재들은 목적이 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도 질서 정연한 세상에서 어떤 목적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진리들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성을 신앙에 중요한 서언(preamble)본다. 이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포함하여 어떤 신학적인 진리들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유한한 피조물들의 영향은 받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이시다. 하나은 자연계의 설계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연계에 계속하여 운행하시고 자연계를 지배하고 유지하시는 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성은 현상 세계를 통하여 모든 존재를 있게 하신 절대타자인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은 ‘영광의 신학’으로 명명하고 ‘십자가 신학’으로 비판했다.
2)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자신의 십자가 신학을 전개한다. 그의 주요 전제는 이성에 바탕을 둔 스콜라주의의 ‘영광의 신학’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신학자로 불리울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논제 19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 만드신 것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람(롬1:20)은 신학자로 불리울 자격이 없다.
논제 20
그러나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보이는 것들을 인식하는 사람은 신학자로 불릴 자격이 있다.
논제 21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이라고 부르고 선을 악이라고 부른다. ‘십자가 신학자’는사실 그대로 말한다.
논제 22
행위도 속에서 인식되는 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러한 지혜는 인간을 극히 교만하게 하고 맹목적이며 완고하게 한다.
논제 24
하지만 그러한 지혜는 그 자체가 악이 아니며 율법도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이 없이는 인간은 가장 선학 것들을 가장 사악한 방법으로 오용한다.
루터는 위의 논제들을 통하여 스콜라 신학의 핵심적인 근거를 반박하면서 자연신학의 오류들을 드러내기를 원했다.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은 이성을 통하여 알려질 수 없다는 것과 둘째로는 오직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 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루터는 자연신학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인식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요한복음 14:8,9절을 주해하면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라는 말은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배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콜라철학의 오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계시를 통해 특별계시를 설명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역사나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피상적인 지식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는 없다. 고린도 전서 1:21을 연결하면서 루터는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덮붙인다. 왜냐하면 자연과 역사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가면 뒤에 숨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인 지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혹은 자연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모든 족속을 나름대로의 신을 갖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간들 위에 신적인 존재가 있음을 알고 있으나 그 신적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9) 스콜라 철학의 하나님은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 고안된 하나님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이러한 영광의 신학을 비판함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감추시고 드러내신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드러내신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으로 인해 더럽혀져있고 왜곡되어 있어서 인간은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습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비천함, 고통, 실패,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알려지시기를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종의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감추어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볼수 있는 것은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감춤으로 우리에게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십자가의 죽음과 약함 속에 그의 계시를 숨기시는 하나님을 볼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벗어난 곳에서 얻는 그 어떤 지식도 우상의 뿌리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그 계시를 파악하려는 이성의 모든 시도들을 거부하는 감추어진 계시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인간의 가장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이성은 이러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 없다. 영광의 신학은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을 향해 상승하려 한다. 그러나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비하하셔서 인간이 되셨다.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단지 나약한 인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하고 할 때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을 고통과 비참함과 버려짐을 말한다. 우리는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치욕스런 패배, 고난, 비참함, 약함, 죽음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겸손 안에서만 인식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 감추어 계신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루터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이 당했던 고통(Anfechtung)을 보았다. 안페히통은 희망이 없는 절망을 뜻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신다. 하나님은 왜 인간들에게 시련과 영적인 고통을 주시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자만함을 파괴시키고 전적인 절망과 겸손의 상태로 떨어뜨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을 비하시키시는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지옥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그리고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이다. 인간이 낮아지고 그래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수 없다는 것은 인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이다.”10)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거나, 내적인 자원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애물들이며, 방해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시련과 고통들을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한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공로와 공적을 무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들과 좋은 것들을 나누신다. 풍성한 교제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Ⅲ 결론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하는 것보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 보다 잘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믿음을 잘 붙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귀중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왜 우리는 담대하게 고난을 받을 수 없습니까?”11)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신자의 삶이다. 루터는 잃어버린 십자가신학을 다시 찾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인 고통과 순례의 길을 지나면서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로 발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공로는 힘을 잃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십자가 신학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터의 고백처럼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고 말해야 한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십자가 없는 고통과 금욕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말씀이 없는 신비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는 시도는 마땅히 배척당해야 마땅하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교회의 건출물들,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신앙이 팽배한 이곳에서 루터가 발견한 십자가의 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직접 인간이 되셔서 고통을 당하시고, 죄인들과 창기들의 친구가 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모두 잃어버린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번역서
롤란드 베인톤 [마르틴 루터의 생애] 생명의 말씀사
베른하르트 로제 [마틴루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벵트 헤그룬트 [신학사] 성광문화사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Ⅱ] 대한예수교출판국
알리스터 맥그레스 [루터의 십자가 신학] 컨콘디아사
국내 논문
박용우, 루터에게 있어서 계시신학의 이해
김주한, 마틴 루터의 생애연구
마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연구
연구홍, 루터와 Institia Dei
1) 1518년 5월 9일자 투르트페터에게 보낸 편지이다.
Ex te primo omniun didici, solis cannicis libris debrei fidem, ceteris omnibus iudicium - rationis)
2) 롤란드 베인톤, 마틴루터의 생애, 생명의 말씀사
3) 베인톤, 앞의 책, p41
4) 롤란드 베인톤, 마르틴 루터의 생애 p45-46
5) 롤란드 베인통. 위의 책 p75
6) 루터의 서재가 수도원의 탑 속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7) 베른흐르트 로제, 마틴루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p364
8) 벵트 헤그룬트, 신학사, 1991, 성광문화사, p318
9)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Ⅱ. 대한예수교 총회 출판국, p61
10) 알리스터 맥그래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 컨콜디아사, p166
11) 1530년 4월 16일 부활전 전 토요일 설교 중에서.. 루터전집 10권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