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닥터 윌리암 제임스 홀 선교사와 결혼한지 3년만에 여의고, 3년후 남편의 전기를 편저하였다. 그녀는 한국에 남편 보다 1년 먼저 와(1890), 43년간을 한국을 위해 봉사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여러 '최초'를 기록해 놓은 인물이다.
평양에 최초의 병원 설립, 맹인 농아학교 설립, 점자도입(뉴욕 포인트)과 한글용 점자개발, 어린이 병동설립, 여자의학교 설립(경성여전, 수도의대, 우석의대를 거쳐 현재 고려대 의대가 됨), 동대문병원(현 이대부속병원), 인천 기독교병원, 인천간호보건대학 등 설립, 또는 시작하였다.
또 한국의 최초여의사(서양의학), 김점동(에스더 K.박)을 키웠고, 한국여성의 인권을 위해서도 일하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뛰어난 미국여성 200인중 한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남편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1860-1894,한국명,忽,혹은 賀樂은 카나다 출신 미감리회 의료선교사이며 목사다. 몬타리오주 글렌 뷰엘(Glen Buel)에서 장로교인이며 석공인 죠지 홀의 맏이로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으며 14세때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 1881년 아덴(Athen)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받아 2년간 교사로 일하였다.
1885년 퀸즈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도에 뉴우요오크의 벨레뷰(Bellevue)병원 의과대학으로 옮겨 1889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하자마다 곧 미감리회에서 추천하는 뉴우요오크 빈민가 선교사업에 참여하였는데 이곳에서 셔우드(Rosetta Sherwood)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한국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어 1892년 6월27일 한국에서 결혼하였다.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제임스 홀은 과로가 겹쳐 말라리아에 걸렸다. 병세가 심하여 서울에 있는 아내 로제타 홀에게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따라 40마일쯤을 내려가서 배를 탔다.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발진티프스가 발행하였다.
1894년 11월 19일 서울에 도착한 소식을듣고 로제타가 아들셔우드를 안고 뛰어 나갔을 때 홀은 혼자 서지 못할 정도로 위급하였다. 열은 화씨 105도를 오르고 있었으며 그 다음날 밤에는 갓난 애기처럼 용변을 가리지도 못하였다.
11월 24일 석양이 물들 무렵 그는 예수님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영원한 안식일에 다시 깨어날 때까지 잠자기 위해... 그는 아내에게 두 손을 잡힌 채 조용히 떠났다. 이것은 로제타 홀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남편의 임종을 그린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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