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을 따라 때를 따라 열매 맺게 하시며,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 햇살을 비추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며, 깊은 밤 고요함 속에서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주의 손이 오늘도 우리를 품으셨기에, 감사의 마음으로 주 앞에 모여 예배하게 하심을 찬송합니다. 산천초목이 누렇게 익어 가을의 옷을 입고, 들판에는 이삭이 고개를 숙이듯, 저희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 머리 숙여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도, 주께서 베푸신 은총과 인도하심은 멈춤이 없었사오니, 그 모든 것 위에 높임 받으소서. 주님, 이 시간 저희는 지난 한 주간, 아니 올해를 돌아보며 고백합니다. 주의 뜻보다 나의 생각을 앞세웠고, 주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이웃의 아픔보다 나의 유익을 먼저 여겼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감사할 조건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도 염려에 빠져 무너졌던 저희의 연약함을 주께 올려드리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간절히 간구하오니, 먼저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 유혹이 밀물처럼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늘 소망을 놓치지 않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믿음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사, 다시금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주와 동행하게 하소서. 아침에는 주의 자비를, 저녁에는 주의 진실하심을 노래하게 하시고, 발걸음마다 주의 평강으로 인도하사 주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 작은 등불을 통하여 이 지역과 열방이 밝아지게 하시고, 예배의 불길이 식지 않게 하옵소서...
남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7가지 1) 미움을 ‘도덕 문제’가 아니라 ‘방어 정서’로 재정의하는 일이다 미움은 흔히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경계 반응이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인간은 집단 안에서 위협과 배신, 무임승차자를 빠르게 감지해 배제하도록 발달한 경향이 있다. 그러니 미움이 치밀 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내 뇌가 위험 신호를 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미움을 경계, 상처, 두려움 같은 단어로 바꾸어 부르면 편도체 중심의 즉각 반응이 전전두엽의 해석으로 옮겨가며 감정의 온도가 내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다. 2) ‘의도 추정’을 멈추고 ‘관찰 가능한 사실’로 이동하는 일이다 관계심리학에서 갈등은 사건 그 자체보다 해석에서 커진다. 미움은 상대의 행동에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같은 성격 귀인과 나를 해치려 했다 같은 의도 추정을 붙일 때 굳어진다. 뇌는 애매함을 싫어해 빠른 결론으로 불안을 줄이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훈련할 질문은 단순하다. 그가 한 행동은 무엇인가, 내가 확인한 사실은 어디까지인가이다. 의도를 추정하는 대신 관찰된 행동만 적으면 내러티브가 줄고 적개심은 느슨해진다. 3) 생각보다 먼저 ‘신체 각성’을 낮추는 일이다 미움은 머리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와 결합된 정서이다. 교감신경이 올라가 심박과 근육 긴장이 증가하면 뇌는 위험을 전제로 정보를 처리한다. 이때는 논리로 설득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먼저 길게 내쉬는 호흡, 짧은 걷기, 찬물 세수, 스트레칭 같은 상향식 조절이 필요하다. 몸이 진정되면 전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회복되어 상대를 흑백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약해진다. 미움을 다스리는 첫 기술은 논쟁이 아니라 생리 조절이다. 4) 경계와 분리를 ‘비폭력적 형태’로 구조화하는 일이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가 없을 때 미움이 쌓인다. 관계심리학의 핵심은 좋아함보다 규칙이다. 싫은 행동을 구체적으로 말하고(예: 늦은 밤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막연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대개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찬양할 때 눈물이 나며, 기도할 때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여깁니다. 물론 이러한 감정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은 감정보다 더 깊고 넓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사랑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 사랑은 인간의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죄를 덜 지어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순종하며, 회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의무를 낳지만, 의무가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주시면 감사하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이 좋으며, 기도가 응답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