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편-2

시편 18편-2

신정론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실 날에 다윗의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다윗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후미에 관한 결과론적 고백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쫓김을 당해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피의 생활 중에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데오디시( [神正論, theodicy, 변신론, 신의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데오스’와 정의의 ‘디케’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말의 의미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 안에 악과 모순이 존재하는 데에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서 쫓겨 다닐 때 다윗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하나님을 불공평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사울을 대적하거나 반항한 적도 없는데 이러한 식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 내재한 모순과 부당함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삶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면 이러한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일가족 살해 사건,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남자의 혜진 예슬이의 유괴살인 사건 등을 보면, 이 세상에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의 사건들, 그리고 뇌물을 써서 부당하게 판결을 내리게 하는 불의한 사람들을 볼 때에, 이 세상이 결코 합리적이거나, 공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수도 없이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또 던졌을 것입니다.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그의 삶 전체를 고통으로 몰고 갔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이러한 고민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갑니다. 왜 하나님은 나이게 이런 삶을 허락하시는 걸까?


이러한 신정론의 문제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악을 보았습니다.

하박국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고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다윗의 고백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0절.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24절,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다윗의 결론적인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롭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5-26절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 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행한 그대로 보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할 수 없으며, 모순이나 부당한 대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보고 있고, 또한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씀들을 부정해야 하는가?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윗은 이러한 모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4절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그 방법 중의 하나는 놋활로 적을 향해 쏘게 하는 것입니다.


39절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이 두 구절은 하나님이 공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앞서 살폈던 다윗의 고백이 담긴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고백들 속에는 시간의 개념을 집어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단순한 결과만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얻기 위한 수많은 전쟁과 피함의 과정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2002년도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어 라고 결과만을 말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4강까지 올라가기 위하여 겪었던 가슴 조임과 설렘, 긴장 등을 모두 빼버린, 앙코없는 찐빵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런 식으로 의미 없는 결과만을 가지고 살수 없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수많은 세월동안 고민해온 결과들이지, 한 순간의 아이디어나 몇 권의 책을 짜깁기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인생을 통해 경험된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때로는 실패도하고, 고난도 맛보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승리하고 만다는 것을 긴 고난을 지나오면서 경험한 것입니다.

[삼하 3 : 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여러 고난들을 맛보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어떻게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이길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의 고백이다.


오늘 하루도 여호와의 말씀을 나의 피난처로 삼아,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승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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