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의 태동



현대신학의 태동

현대신학이라 함은 인간의 자율을 강조하고 성경을 더 이상 계시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비평되어야할 인간의 책으로 바라보는 신학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현대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율' 이다. 인간의 이성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신학의 태동은 이미 종교개혁 당시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신학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합리주의를 따르고, 과학적 측면에서 경험주의이며, 정치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이다.

현대신학의 태동을 종교개혁 시기로 잡는 이유는 권위적인 중세에서 종교개혁은 개인의 자율를 강조하고, 교회의 권위보다 개인의 성경 해석과 자율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세의 권위에 눌려 지내 강요된 믿음에서 개인의 자율을 찾고자하는 이들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 미신적인 중세 종교를 벗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선악의 판단 기준은 내가 아닌 '나의 밖'에 있는 것이었다. 특히 교회와 성경, 신이었다. 현대는 이러한 기준은 개인의 외부에서 개인 안으로 즉 '나'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내'가 판단하고, '내'가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갈릴레이의 발견으로 인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도 큰 몫을 하고있다.

현대를 정의하는 대전제는 우주와 자연는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합리적으로 어떠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 올바른 방법을 통하여 얼마든지 모든 것을 알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적 평가와 인간을 계발한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인간관을 전제하고 있다. 진화론은 이러한 전제 속에서 끊임없는 진화를 통하여 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미를 추구하고 사치와 향락, 그리고 산업혁명을 통한 사회와 물질의 풍요을 이룬 빅토리안 시대는 이러한 꿈과 이상에 젓은 시대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철학은 합리주의의 아들인 이신론이다. 이신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인정하되 창조시에만 신은 개입하셨고, 그 후로는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이다. 마치 시계를 만들고 나면 시계가 알아서 스스로 돌아가듯이 인간의 세계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신론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삭 뉴톤에의하여 제기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대변된다.

결국 이러한 전제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의 산물인 계시로서의 성경을 부인하게되고, 기적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더 이상 신적 기원이 아닌 단순한 인간의 작품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신앙의 대상에서 비평과 판단 받아야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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